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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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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7. 9. 00:00

<출애굽기 9:1~7> 우리에게 심판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성경말씀 : 출애굽기 9:1~7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3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며 

4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5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6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말씀묵상

오늘 재앙이 다섯 번째 재앙입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을 서론으로 본다면 피, 개구리, 이, 파리의 재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고대의 신의 개념이란 그 나라가 얼마나 크고 강하냐에 따라 그 신의 위대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애굽의 신이 히브리 노예의 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만큼 되었는데도 계속하여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 번 하시다가 그만 두시면 되실 텐데 그만 두시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언약을 반드시 성취시키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여 낸다.

그러시면 바로가 아무리 거절하여도 바로를 꺾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로가 거절하면 할수록 재앙의 강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재앙이 심하게 닥치는 것입니다.

드디어 다섯 번째가 되자 무엇을 치기 시작하십니까?


가축을 치십니다.

가축은 애굽인들에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 애굽의 왕을 아멘호텝 2세로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동물숭배자로 특히 소를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집트에 남아있는 벽화에 아멘호텝 2세가 소 밑에서 젖을 빨고 있는 그림이 있답니다.

그러니 소가 신이니 신의 젖을 빨아 먹는 자신도 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짐승을 신으로 섬기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서 1:23-24절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왜 짐승을 섬기는 것입니까?

죄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마땅히 창조주를 섬겨야 할 인간이 사람을 섬기고, 짐승을 섬기고, 피조물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 결과 이들은 짐승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찬양 받으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피조물을 섬기고 있는 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좇아오는 것입니다.


소는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육체의 힘이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힘센 소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이 나오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권력과 명예와 모든 재능을 더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소의 우상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면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만하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인생을 구원해 주는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인들만 소를 섬긴 것입니까?

아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만들어 섬겼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소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여호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을 섬기던 나라에서 구원받아 나왔는데 광야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소를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사실을 민수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4:22절입니다.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

많은 이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바로와 같이 광야에서 이스라엘도 많은 이적을 보고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청종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애굽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 횟수를 열 번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딱 열 번만 순종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닙니다.

더 많이 그들은 순종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열 번이란 숫자에 맞추어 말씀하신 것은 애굽에서의 열 재앙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즉 바로가 순종치 않은 횟수에 빗대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애굽을 다르게 대하십니다.

순종치 아니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래고 어르고 징계함이 반복되는 것이 구약의 역사 아닙니까?


애굽에 단순한 재앙을 내려 심판을 하시는 것으로 끝을 낸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온전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까지 나아오게 하는 것으로 항복을 받아내십니다.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닥치는 환난이나 고난이란 심판의 재앙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끊어내시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시려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한번 해서 안 되죠?

두 번, 세 번,,, 정신 차릴 때까지입니다.

그리고서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주님의 말씀에 경성하여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결코 애굽의 소가 아닙니다.

나의 능력이나 나의 노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우리의 삶으로 고백하며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섬기는 자리에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고 가실 것입니다.

 

 기     도 

내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 섭리임을 깨닫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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