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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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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2. 8. 00:07

<창세기 25:27~34> 장자권을 경홀히 여긴 에서

 

 성경말씀 : 창세기 25:27~34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말씀묵상

 

알래스카는 눈으로 보기에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혹한의 추위과 눈으로만 덮여 사람이 살기게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헐값에 이 땅을 미국에 팔았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자원의 보고였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땅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알래스카를 통해 얻는 유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 가치를 알 수 없었습니다.

러시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알래스카의 가치를 알지 못해 전략적으로나 자원적으로 중요한 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에서가 그렇습니다.

자신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팔아 버렸습니다.

장자의 명분이란 것이 가시적인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장자권은 명분만 있을 뿐이지 지금 나에게 가져다 주는 실익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당장 배고픈 문제 하나도 해결할 수 없는 권리였습니다.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은 별로 쓸데가 없었습니다.

만약 야곱이 팥죽과 사냥해온 짐승을 교환하자고 했으면 에서는 그 요청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팥죽 한 그릇이 사냥해온 짐승의 가치보다는 훨씬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보다도 못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장자의 계보를 통해서 여자의 후손 메시아가 온다는 사실은 선조 대대로 가르쳐 내려 온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에서와 야곱 모두가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터인데 야곱은 그 장자권을 귀중히 여기고 갖기를 사모한데 반해 에서는 그것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사실 그 당시엔 하나님의 약속이나 메시아에 대한 관념이 오늘날과 같이 확연하지가 않고 희미하며 막연했습니다.

구약 성도들의 위대함은 그렇게 희미하고 막연한 하나님의 약속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서도 신앙생활을 잘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사냥꾼이었다고 말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사냥꾼은 힘세고 용맹스러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그런 사람들이 능력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그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당연히 집에서만 있던 야곱보다도 훨씬 세상을 보는 식견이 넓었을 것이며  현실적 감각이 뛰어 났을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보면 볼수록 그의 눈은 안목의 정욕으로 덮여집니다.

안목의 정욕은 세상으로 향하는 욕망의 창구입니다.

이제 에서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가치들에는 점점 관심이 없어집니다.

 

도대체 약속의 계보가 나를 통해서 이어진다고 해서 내가 얻을 현실적인 유익이 무엇인가?

이것이 에서가 생각하는 장자의 명분이었습니다.

 

에서의 생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쫓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만이 저들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당장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조그마한 이익때문에 영적인 가치를 팔아먹은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귀중히 여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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