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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9. 00:00

<출애굽기 2:23~25> 이스라엘의 신음소리를 듣는 하나님

 

 성경말씀 : 출애굽기 2:23~25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말씀묵상

성경은 미디안에서의 모세의 모습을 그리고서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의 탄원과 그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술합니다.

이것은 이제 모세도 광야의 훈련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이 애굽에서 구원되기를 진정 바라게 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일하실 때가 임박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의 훈련을 다 마쳤어도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면 그 일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애굽 안 밖에서 역사를 진행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중에 탄원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신세 한탄이 아닙니다.

모세가 애굽에 있을 당시에도 그들의 고통의 소리가 있었지만 그 소리는 신세 한탄의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부르짖음은 애굽이 자신들의 살아갈 곳이 아니라는 깨달음의 외침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애굽을 떠나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가야한다는 절체절명의 의식이 담긴 메아리였습니다.


이 부르짖는 소리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권념하셨습니다.

이것이 이방종교의 기도와 우리이 기도가 다른 점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정성에 의해 자신들의 신이 감동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간절한 정성이 들어간 부르짖는 그 소리 자체가 신비한 효력을 발생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놓여 있는 언약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면‘지성이면 감천’식의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것은 당신이 하신 약속때문이지 우리들의 부르짖음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에 그들의 선조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여 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언약관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로 주어진 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에 오고가는 당당한 요구와 응답이 쌍방의 사이가 부모와 자녀라는 절대적인 신뢰 관계를 나타내는 표지처럼 말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당당하게 간구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과 우리가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된 언약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한 내용의 응답여부를 떠나서 기도라는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그 언약 관계를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그냥 주시지 않고  꼭 기도라는 수단을 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관점에서 부르짖음 또한 그 관계를 확인하는 통로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심에 있어 하나님께 부르짖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가운데서 부르짖는 우리의 호소를 듣고 우리의 간구를 응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간절한 부르짖음과 응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긍휼하심 안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과 맺어진 언약관계의 중심에는 바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긍휼하심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극에 달하도록 내 버려두신 것도 그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절체절명의 마음으로 부르짖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확인하라는 의미에서입니다.

그 관계 안에서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긍휼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각인하라는 것입니다.


25절에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는 표현은 한글성경에서의 번역은 잊고 있었다가 생각난 것처럼 보이는데 원뜻은 그것이 아니라 계속 생각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이 방주 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노아의 가족이나 자식이 없어 애태우던 라헬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쓰인 단어입니다.

즉 오랜 기다리심 가운데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음을 시사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은 백성들 스스로 힘을 키워 쿠테타를 일으켜서 독립하는 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시작점은 바로의 압제에서 더 이상은 애굽에 소망이 없음을 알고  신음하며 부르짖는 소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비로소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죄악을 바라보며 가슴아파하고 한탄하는 부르짖음을 듣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알고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를 듣기 원하십니다.

그 소리가 하늘에 들릴 때까지 주님께서는 보고만 기다리십니다.

우리들에게서 이러한 소리가 나올때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가 됩니다.

 

 기     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되기 위한 부르짖음과 신음소리가 우리의 심령가운데 있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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