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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9. 27. 00:00

<출애굽기 21:12~17>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는 죄의 형벌

 

 성경말씀 : 출애굽기 21:12~17

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13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14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6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말씀묵상

십계명에서 주신 6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만 있지 그 계명을 어긴 사람에게 내리는 형벌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그 명령보다도 살인자에게 주어지는 형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형벌은 바로 사형입니다.

살인한 자는 죽음으로 그 댓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살인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크고 무서운 죄인지를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저주하거나 때린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를 살인자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당시 부모는 하나님의 언약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것 또는 사람을 유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전달을 좌절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서도 누차 강조되었지만 이 율례 역시 결코 윤리적인 차원에서 사형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6계명에서 다룬 것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를 파괴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의 근본취지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존귀히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지만 율법은 양상만 다를 뿐 그 근원을 따라가면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존귀히 여김을 받을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 형상을 입은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분이나 조건, 그리고 상황에 따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계명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모든 계명의 근본취지에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워하는 것과 살인이 하나님이 보시기엔 의미상에 있어서 동일한 살인죄인데 왜 실제 살인한 경우에만 사형이 해당됩니까?

그것은 실제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 형상을 파괴하는 일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죄악된 본성상 율법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취지를 사람이 그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너무 잘 아십니다.

하나님의 잣대를 가지고 우리 삶과 마음을 잰다면 우리가운데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봐 주신 것입니다.

그 증거로 보여주신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도피성입니다.

살인을 했어도 그 일이 과실이면 도피성이라는 법을 통해서 보호를 받게 하셨습니다.

원래는 죽은 자인데 정상을 참작해서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율법의 정신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사실 모두가 사형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죽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도피성 제도에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규례를 통해 사회질서를 유지키 위한 최소한의 규례를 주시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는 도피성이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악된 본성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살인을 하게 되면 사회질서가 파괴됩니다.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만큼은 막으셔야 했기에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는 중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성경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살인에 대한 형벌제도를 존속시키신 것은 사회가 지탱하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다면 실제 살인을 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규례에 담긴 근본취지와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람을 존귀히 여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사형에 해당할 만큼 무서운 죄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외모와 사회적 신분과 위치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했다면 그것이 사형에 해당할 만큼 두려운 죄로 알고 그렇게 하지 않기를 힘써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는 것이 죽음을 당할 만큼 무시무시한 죄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부모를 거역하는 것과 사람을 유괴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부모란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부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고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대적하는 일들이 다반사가 되면 그 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핵가족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부모와 어른의 권위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원문상에서 부모를 거역하는 것은 오 갈데 없는 부모를 모시지 않는 행위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오갈데 없는 부모를 모시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것도 사형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미혼 여성들이 부모를 모시는 남자와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얼마나 불신앙적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이 세상의 가치와 의식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늘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이 우리이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납치를 하는 것이 왜 이렇게 무서운 죄입니까?

납치도 넓게 보면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인간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 주로 노예로 팔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훔치는 것은 그에  해당하는 것 만큼 갚으면 되는되 사람을 훔치는 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그 만큼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 당시의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란 그렇게 사고 팔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람을 납치하여 파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을 납치한다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심판날에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는지 모릅니다.

“너희가 사람을 납치하면 사형에  해당한다고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자는 동일한 형벌을 주겠다” 라고요.

경중에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삶에서 사람을 이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기     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하여 사랑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21: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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