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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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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8. 15. 00:00

<출애굽기 15:1~2> 하나님의 속성을 노래하다

 

 성경말씀 : 출애굽기 15:1~2

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말씀묵상

구원받은 성도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감사와 찬양이 있다는 것입니다.

홍해 사건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이런 찬양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열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피부로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 재앙들이 고센 땅에 있었던 자신들은 직접 보거나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넘실거리는 물기둥 사이를 자신들이 직접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곳을 지날 때에 얼마나 조마조마 했겠습니까?

그 상황에서 자신들은 무사히 건넌 반면에 기세 등등하게 추격해 오던 애굽의 군대는 일거에 홍해의 깊은 물속에 수장되는 웅대하고도 역동적인 구원과 승리의 체험은 곧바로 화산처럼 터져나와 감사 찬양의 노래와 춤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간접적인 은혜의 체험을 가지고는 이렇게 구원에 대한 찬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큰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건짐을 받으며 그 사실을 내가 보고 듣는다고 해도  그것이 막상 자기 자신이 직접 당한 것이 아니면 이런 찬송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구출을 받아야만 중심에서 터져 나오는 찬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홍해사건을 직접 경험함으로 이스라엘이 부르는 노래의 내용을 보면 단순히 홍해바다 건넌 사건만을 가지고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펼치실 모든 구원의 여정을 바라보며 노래합니다.

아직 그들이 경험한 것은 홍해를 건넌 것 뿐인데 이들의 찬양의 내용 속에는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과 마직막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까지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노래를 통하여 온전한 구원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에는 구원의 과정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노래 부르는 첫번째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높고 영화로우심에 대해 노래합니다. 바로의 군대를 몰살시키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그 당시 바로는 오늘날의 일반 군주 개념을 훨씬 뛰어넘는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의 세력이 바다에서 모조리 수장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표현하여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의 세력을 멸절 시켰다는 것은  여호와가 그동안 자신들이 접해왔던 다신교 배경속에 있는 능력있는 신들중에 좀 더 뛰어난 하나의 신이 아니라 우주의 주권자로서의 절대적 능력을 가지신 유일한 신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해 사건의 초점이 이스라엘이 바다를 무사히 건넌데 있지 않고 애굽 군대가 바다에서 몰살 당한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당시 배경에서 바로의 군대가 몰살당한 것에는 큰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사건을 경험한 후 가장 먼저 찬양한 내용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위엄과 영화로움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때도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담고 있는 내용의 찬송을 가장 먼저 부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통적인 예배에서는 비교적 이 형식이 잘 지켜져서 찬송가 앞부분에 있는 곡들을 예배시 가장 먼저 불렀는데  현대예배에서는 이 형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문제가 구원과 직결된 본질의 문제는 아니나 이 형식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는 구원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여정에서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할 것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우주의 주권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경험이 전제되지 않으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이미 그 안에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할 때도 유대인과 같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신앙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해야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이 구원과 찬양에 있어 순서상 가장 먼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한 이스라엘은 이제 그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노래합니다.

2절을 보십시요.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무한한 능력이 있는 분일지라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노래하기를 그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힘이 되고 그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해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위대하심이 나의 노래 제목이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만 계신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존재로만 다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능력이 나의 힘과 구원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노래할 제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당신과의 언약관계 안으로 우리를 초청하신 그분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이 두가지 사실만 우리 마음에 각인하고 있어도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의 노래가 메마른 우리의 삶을 촉촉히 적셔 줄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우리를 사랑하신 그 은혜를 인하여 나의 삶에 찬양이 넘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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