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qtman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Rss feed Tistory
구약 QT/출애굽기 2020. 8. 9. 00:00

<출애굽기 14:9~14> 이스라엘의 원망과 분노 모세의 신앙

 

 성경말씀 : 출애굽기 14:9~14

  9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말씀묵상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갔는데 그곳이 광야길이었습니다.

아니 광야도 아니고 아예 독안에 든 쥐모양이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애굽의 군사는 뒤에서 쫓아오고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힌 진퇴양난에 이스라엘이 서 있습니다.


애굽의 군대를 보고서 이스라엘은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 부르짖음이 기도로 보입니까?  아니요 항의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다가 여기서 죽게 하려고 인도하여 내신 것입니까?

 

우리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여기서 죽게 하느냐고 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따집니다.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어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됩니까?

그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애굽에서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오히려 나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내가 예수를 믿고서 오히려 고생이다.

차라리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없으십니까?

그래도 열심히 믿는다고 믿어 왔는데 되는 일이란 없고 오히려 사방팔방이 꽉 막혀가지고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할 때 기도라는게 사실 원망입니다.

"아니,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뭐 구원해 달라고 했습니까?"

"나는 그냥 세상이 좋은데 괜히 불러내어서 이렇게 생고생시키는 것입니까?" 하는 원망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끙끙대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란 환경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백성들에 비해 모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에게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의지적 결단이나 애씀이나 달음박질하거나 원하거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서있으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40세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어 이런 곳에 왔다면 배수의 진을 치고서 앞에서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적을 막아내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40세가 아니라 80세가 되도록 양이나 치는 사람으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자기 스스로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만히 있도록 하시는 훈련을 40년을 통하여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서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잠잠하게 있으라고 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나 가능한 것입니다.

산 자는 끊임없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무언가 든든한 보호막을 만들어 놓아야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른 보호막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꼭 이러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손발 다 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아이고, 하나님 나 항복합니다.

그러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기 전에 가만히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서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펄펄 살아서 뛰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애굽의 목적 그들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지점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 때문입니다,

그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하나께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면초과에 몰아세우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베푸실 구원을 바라보며 잠잠히 기다리게 하는 훈련을 시키십니다.

 

 기     도 

사면초과에 처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여호와께서 베푸실 구원을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을 주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4:15~16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