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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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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8. 14. 00:00

<출애굽기 14:22~31> 애굽인의 시체가 보입니까?

 

 성경말씀 : 출애굽기 14:22~31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말씀묵상

하나님의 이적은 창조물을 사용하실 때가 참 많습니다.

동풍은 사막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쳐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알아서 다 해 주심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적도 당신이 세우신 자연법칙을 이용해 일으키십니다.

이때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물이 갈라져라! 말씀 한마디면 될 것이고 아니면 이스라엘은 바다 건너로 전부 이동되어라! 하시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그것도 뜨거운 동풍으로 바닥을 마르게 하심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이적에는 과정이 있고 질서가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람으로 물을 갈라 놓으셨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는 동안 바다를 물벽으로 갈라놓기 위해서는 세찬 동풍이 계속 불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물을 갈라놓을 정도가 되려면 그 바람이 세기가 얼마나 강했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 사이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정도의 바람세기라면 사람이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찌 그 속을 걸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다 날려가 버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유유히 그 바람의 가운데를 걸어갑니다.

이것은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태풍이나 돌풍의 중심에는 눈이라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은 아주 조용한 곳입니다.

바람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가는 곳을 태풍의 눈과 같이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이적을 일으키면서도 자연의 법칙과 그 과정을 동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적을 무슨 도깨비 방망이나 알라딘의 램프같이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이제 바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갈라놓으신 바다사이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갑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도 다 그 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옵니다.

바다가 갈라지며 양 옆으로 물벽이 세워지고 그 사이로 이스라엘이 건너는 것을 보았으면 이스라엘 쫓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 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모습은 평범한 광경이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장면입니다.

사실 마음이 완악하지 않다면 그것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든지 이스라엘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혈안 되어있는 바로에게 그런 경고와 사인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기 앞서 가는 이스라엘을 보니 어린아이는 물론 노인들까지 걸어가고  땅은 말라 대로가 되어 있으니 거침없이 따라 잡을 수가 있다는 계산이 선 것입니다.

결국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바다에서 완전히 수장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추격하는 바로를 따돌리고 이스라엘만  무사히 바다를 건너면 될터인데 구태여 죄없는 애굽의 군사들까지 모두 죽일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애굽사람을 미워해서 죽인 것이 아닙니다.

열 재앙을 생각해 보십시요.

하나님은 애굽인을 죽이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어차피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다만 이스라엘 역사는 구속의 진리를 설명하기 설정된 특별한 무대였습니다.

그 무대 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일반화시켜서는 안됩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은 유월절의 은혜를 받은 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구원의 과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무대에서 애굽인은 세상에서의 옛 자아로 등장한 것이며 바다를 건넌 이스라엘은 새로운 자아로 등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옛 자아를 완전히 수장시키야 함을 보여주시기 위해 바로의 군사들이 모조리 수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30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홍해도하 사건과 애굽사람의 시체를 보는 것을 연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바다를 건넌 사건과 이스라엘이 바닷가에 수장된 애굽사람의 시체를 보는 것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31절을 보면 그 내용을 더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바다를 건넌후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신 은혜 때문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라고 표현합니다.

즉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홍해도하 사건의 초점은 애굽사람들이 바다에 수장된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홍해로 몰아세우고 애굽이 추격하도록 허락하신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도록 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애굽을 수장시켜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은 이스라엘이 바로의 손에서 벗어난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바로는 언제 이스라엘의 뒤를 쫓아올는지 모르는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바로와 그의 군대는 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도하 사건은 바로의 세력이 완전히 초토화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지금까지 애굽에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로는 가장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비록 그의 손아에서 탈출하기는 했지만 바로는 언제든지 쫓아와 다시 자신들을 잡아갈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홍해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쫓던 원수가 완전히 진멸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건넌후 애굽사람의 시체를 보면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이제 애굽과는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각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체들을 보며 애굽을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자신들 안에 남아 있는 애굽의 잔재들을 함께 수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계속 따라가다 보면 구원의 영역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유월절은 단지 구원의 시작일 뿐입니다. 

유월절의 구원을 경험한  이들이 이제 홍해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여정에 있어 유월절 사건에 이어 홍해사건이 필연적으로 따라와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는 사단의 손아귀에서 놓여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안에서 죄악의 세력이 우리를 좌지우지 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세상이 나에 대해 살아있고 내가 세상에 대해 살아 있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수장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힘과 의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홍해바다를 가르고 애굽을 수장시키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에 광야를 이리저리 헤매고 바다까지 코너로 몰려온 것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여호와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몰고 다니기는 하지만 결코 이스라엘의 자기 노력이나 애씀을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오직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자기 노력과 희생과 은혜로 성취시키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몰고 다니면서 원하시는 것은 이 여호와의 가능성을 믿어 달라는 것이요.

그 은혜성에 모든 생명을 위탁하고 마음놓고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할뿐입니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이 사실이 실재화 되지 않는 것은 진정으로 그 사실을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나는 세상에 대해 죽었고 세상도 나에 대하여 죽음을 당했습니다.

홍해에서 애굽사람을 몰살시킨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애굽을 전부 몰살시킨 것입니다.

그 시체가 보여야 합니다.

모세 때는 그 사실을 육신의 눈으로 확인했지만 이제는 영의 눈으로, 믿음으로 그것을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시체를 보게 하시려고 당신을 광야끝 바다의 코너로 몰아가실 수 있습니다.

 

 기     도 

홍해에서 애굽 사람이 수장된 사건을 지금 나의 삶에서도 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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