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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7. 27. 00:00

<출애굽기 12:37~38> 잡족의 믿음

 

 성경말씀 : 출애굽기 12:37~38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말씀묵상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는 외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장정만 60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숫자는 한 가정에서 가장의 숫자를 말합니다.

따라서 실제 숫자는 200만 ~ 250만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가능한 한 숫자를 부풀이는 것이 상식입니다.

특히 고대사회에서 사람의 숫자는 힘과 번영을 상징햇습니다.

그래서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가장의 수 60만보다는 전체 숫자인 250만명을 기록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야 외형적인 모습에서 오는 이스라엘의 힘을 과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구원의 한 단위로 여기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면면히 내려오는 사상이요 신약에서도 그 전통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살하려는 간수를 향하여 “예수를 믿으면 네가 구원 받는다고 표현하지 않고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이 구원 받을때는 그 가정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한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정이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가장 기본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숫자로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셈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경이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를 모세의 생각대로 기록했다면 분명 자신의 업적을 생각해서라고 250만명이라고 기록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철저히 하나님의 영감하에 이 성경을 기록한 것입니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많은 잡족이 출애굽했다고 말합니다.

그 당시 애굽의 노예로 있던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포로로 끌려온 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잡족들은 출애굽하기까지의 이스라엘 민족들의 행적을 보며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따라 나가면 지긋지긋한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자신들의 남은 인생이 행복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잡족들에게 있어 출애굽의 의미는 가나안땅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고통과 압제의 상황을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그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있어 여호와의 의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즉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러나 잡족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의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아닌 그저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들에게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줄 수 있는 전능한 신이었을 뿐입니다.

우리 기독교를 타종교와 구별짓는 여러 특징이 있읍니다.

그중에 중요한 하나가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도 구약과 신약이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가 언약관계라는 것입니다.

언약 관계라는 것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당장 눈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잡족은 하나님을 언약관계에서 알지 못했기에 광야에서 자신들에게 어려움이 극심해지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오직 그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힘을 통해 자신들의 인생에서 고통이 없어지고 행복한 삶이 되는 것만을 바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족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잡족들도 이스라엘 함께 출애굽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들도 언약백성 안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모세와 주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 밖에 있는 내용들은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결국은 그러한 잡족들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들까지도 하나님을 불평하며 애굽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잡족의 영향을 받아 그러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참된 이스라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잡족이 섞여 있게 마련입니다.

그 잡족들이 교회 안에 많아질수록  교회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능력을 상실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잡족들이 많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약속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다리시지만 관심이 오직  현실의 삶에만 있는 사람들에게 언약의 말씀은 지루하고 답답할 뿐, 그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현실의 삶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약속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안에서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육신적으로 내게 필요한 말들만 골라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가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복음 선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기름칠 해주는 교양강좌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속에서 내가 잡족이 아니라고 장담하기가 힘듭니다.

어쩌면 내가 그 잡족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언약에 근거한 믿음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자신의 유익과 도움을 위한 믿음을 가졌다면 그것이 잡족의 믿음입니다.

그 잡족의 믿음으로는 우리의 인생과 신앙생활이 광야가 되어야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소망가운데 가나안을 향해 진군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잡족의 믿음으로는 우리가 영적군사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군사들의 영적훈련과 영적전투가 노예의 생활보다 실제적으로는 더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존재적으로는 잡족이 아닐찌라도 우리 심령의 한 부분을 잡족이 차지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잡족을 몰아내고 우리의 심령이 순전한 이스라엘 민족으로만 채워지도록 순수한 믿음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     도 

내 안에 있는 잡족의 믿음을 제거하고 약속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2: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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