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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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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8. 00:00

<창세기 9:18~21>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

 

 성경말씀 : 창세기 9:18~21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말씀묵상

개구리를 100도씨 끓는 물에 넣으면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왜냐하면 너무 뜨거워 놀라 튀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도, 30도, 50도,,, 차차 높이면 높은 온도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100도가 되어도 개구리는 튀어 달아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에 화상을 입고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물학자가 실제 실험을 한 결과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실레인 것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노아에게 이런 시험이 찾아 왔습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 벗은채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포도주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그 포도주입니다.

그전부터 익숙해 있던, 계속하여 마셔 왔던 그 포도주란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노아의 술취함은 일시적인 실수가 아니란 것입니다.

이미 술마시고 취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 전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이제는 술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직후의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이제는 먹고 살만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가장 두렵게 다가왔던 홍수 심판도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노아는 이제 자신이 싸워야 할 영적전투의 대상이 사라져 버린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심판을 대비하며 긴장했던 마음들이 점점 느슨해지며 죄악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노아에게 주어진 여유롭고 풍성한 삶이 오히려 노아로 하여금 죄악의 길에 들어서게 한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이 중근동 지방임을 고려할때 포도주는 음료로서 만들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포도주 마시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포도주가 금지된 상황이라면 아예 입에 대지 않았을텐데 어느 정도는 마셔도 될 수 있었기에 술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진 것입니다.

노아는 어차피 음료수인데 조금 더 마시면 어떠랴 하는 맘으로 포도주를 계속 마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함정입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큰 범죄를 저지르게 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죄를 범하게 합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순종치 못하게 합니다.

점점 죄에 대한 감각을 둔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래서 아가서 2장 15절에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고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작은 여우는 포도원을 망가뜨리기에는 너무 보잘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여우가 포도원을 모두 망가뜨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빨리 잡으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여전히 하찮케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를 공략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신앙양심의 잣대를 들이대야 합니다.

거기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죄악의 물결은 우리의 심령을 순식간에 잠식해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 풍요로움과 여유를 누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과 환경에서 사단은 별거 아닌 것 같은 문제로 사단은 우리를 공략합니다.

좀 더 잘 먹고 잘 입고 살고픈 마음들은 꼭 죄라고 할 수 없는 영역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잣대를 들이댈 만큼의 큰 죄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그 죄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영역들이 어느새 우리로 하여금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포도주가 음료이면서 술이 될 수 있었듯이 경제적 풍요로움은 당언히 누려야 할 삶의 일부분이면서도 동시에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영역입니다.

우리가 이 작은 것을 간과하게 되면 어느새 세상에 취해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     도

지극히 작은 일에 조심하여 마귀에 올무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그것에 취하여 살지 않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9: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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