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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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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6. 1. 00:00

<창세기 50:22~26>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

 

 성경말씀 : 창세기 50:22~26

22  요셉이 그 아비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하여 일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말씀묵상

빛과 생명으로 시작된 창세기의 대미가 죽음에 관한 기록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는 범죄한 인간의 실상 곧 죄 범한 인간은 모두 다 죽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관한 마지막 기사가 무엇인가 빠진 듯 불완전해 보이게 창세기가 끝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끝을 맺고 있는 26절의 묘사를 보십시요.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입관을 했으면 그 나머지 장례 절차가 뒤 따라야 정상인데 그것으로 끝입니다.

전체적인 장례 절차를 묘사하지 않을 양이면 차라리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라는 한마디의 기록으로 죽음을 묘사하는 편이 창세기 전체를 매끄럽게 마무리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정쩡하게 입관에서 끝이 난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가 타락의 결과인 죽음을 말하면서도 죽음으로 끝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마땅히 세상으로 상징되는 애굽에서 사망으로 끝나야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에서 꺼내어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내시고야 마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에 창세기가 완전한 사망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4-25절을 보십시요.

요셉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애굽을 떠나 맹세하신 땅에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가나안을 향해 나갈 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합니다.

성경은 지금 요셉의 장례를 미루고 있습니다.

요셉의 장사는 가나안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은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그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마지막 장에서 요셉의 그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11:22)


실제로 요셉의 장사는 어디에서 이루어집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수24:32)


창세기 50장에서의 입관이 여호수아 24장의 하관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나안을 모두 정복하고 각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한 후의 기쁨과 영광의 축제 가운데 요셉의 장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으며 환희와 감격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 기쁨의 감격가운데서 요셉의 장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 장례의 휘날레를 애곡소리가 아닌 기쁨과 감격의 노래로 장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완으로 끝나 보이는 요셉의 장례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애곡과 애통의 장례식이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천국잔치로 바꾸어 질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망의 권세로 인한 우리의 장사가 어떻게 결론 나게 될 것인가 더욱 구체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4)


여기가 어디입니까?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바로 이 결론을 향하여 창세기가 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이 비록 범죄한 인간의 실상인 죽음으로 끝을 맺고 있지만 동시에 성도에게는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또 다른 소망의 시작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창세기의 출발은 죽음이 없는 낙원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비록 아담의 범죄로 인해 잠시 사망의 권세가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지만 그 잃어버렸던 낙원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메세지가 창세기의 마직막 구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다시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하나님 나라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 나라를 소망하고 기대하며 오늘을 밟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사망의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죽음의 권세를 향하여 조롱하며 살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입니다.

 

 기     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마의 권세를 조롱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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