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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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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5. 2. 00:00

<창세기 47:1~12 (2)> 절제는 풍요시대의 미덕입니다.

 

 성경말씀 : 창세기 47:1~12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말씀묵상

요셉과 그의 가족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는 과정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들을 그들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려가면 고센 땅에 살라고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은혜 안에 거하게 되자 하나님이 일일히 말씀해 주시지 않는 상황속에서도 믿음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과 함께 야곱의 가족들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두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릴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복을 스스로 반납하고 그 전과 똑 같은 고생스러운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도 인간인데 어찌 모처럼 찾아온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이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삶에서의 선택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선택기준은  그 일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좋은 편이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개념이 그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의 성도들을 나열하며 강조했던 믿음의 세계입니다.


결국 그들의 선택기준은 믿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때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선택기준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인생이 구속의 역사가 펼쳐지는 공간이요 통로라는 믿음하에 우리 삶을 해석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삶을 통해 내 삶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까를 고민하며 인생의 행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일이 말씀해 주시지 않은 사안이라도 이 원칙을 가지고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합니다.


요셉과 그의 가족들은 이 믿음을 따라 애굽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고센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믿음의 삶을 위하여 당연히 누려도 되는 것들을 절제하며 포기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는 애굽의 풍요로움이 펼쳐져 있습니다.

환란과 핍박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킨 우리 믿음의 선배들때문에 후손들인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지극히 미약한 우리의 조국이 이토록 발전한 것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풍요로움을 얼마든지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마음껏 누린다고 해서 죄 짓는다고 시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풍요를 만끽하는 것이 죄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믿음으로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풍요로움 가운데 세상이 가져다주는 안락함과 재미로 넘쳐나는 삶에서 과연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삶이 과연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통로가 될 수 있을까요?


요셉이 굳이 고센을 선택한 것은 인간의 본성과 연약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중심에서 애굽이 주는 모든 풍요를 만끽하며 살아갈 때 그 삶을 통해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풍요가 가져다 주는 안락함과 재미에 빠져서 만끽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은 등한시 여기며 살아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이 믿음을 따라 생각할 때 우리 앞에 펼쳐진 풍요롭고 안락한 삶에 대해 어느 정도는 거부하고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휘황찬란한 애굽의 중심을 거부하고 변방의 고센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이 믿음의 삶을 위해 절제가 필요합니다.


핍박이 없고 편안하며 풍요로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절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전9:25)

 

 기     도 

편안하고 풍요로운 시대 속에서 절제된 삶을 살게 하사 선진들의 믿음을 따라 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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