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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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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10. 00:00

<창세기 42:10~25 (3)> 영광과 축복을 나누어 주려는 요셉

 

 성경말씀 : 창세기 42:10~25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말씀묵상

 

요셉이 형들을 재회하게 된 것은 요셉이 받고 있는 축복을 그의 가족들에게도 전달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권세를 누리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언약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창세기 27:29에 보면 이삭을 통해 야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이 나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은 표현만 다를 뿐이지 그 내용에 있어서는 요셉이 꾼 꿈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걸국 요셉이 받은 꿈의 내용은 야곱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약속이 장자의 계보를 통해 계승되어 왔기에 야곱가문의 영적 장자권을 가진 요셉에게 (대상5:1-2) 그 약속이 계승되어, 요셉에게 꿈으로 다시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받은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씨에 대한 계승이었습니다.

나아가 이것은 여인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아담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어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의 언약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의 씨, 메시아가  받을 영광을 말하는 것이며 이스라엘 공동체가 받을 축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모든 성도가 받을 축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의 명분이 주어진 자들을 통해서 이 축복의 약속을 계속해서 이어가십니다.

그래서 혈통적 장자의 명분을 얻게 되는 유다에게도 동일한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49:8)

 

지금 총리가 되어 만민이 그에게 굴복하고 있는 것은 요셉 개인이 받을 축복이 아니라 야곱에게 주신 축복, 즉 야곱 가문 전체가 누릴 영광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것을 보고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먼저 애굽에 보내서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했습니다.

요셉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들이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 성취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기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요셉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영광을 자신 혼자만 누리려고 하지 않고 온 가족과 함께 그 영광을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 자신은 몰랐지만 요셉의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여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요셉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주장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는 그의 형들이 양식을 갖고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함께 와서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첫번째 조치가 형들의 잘못에 대한 회개를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앙금이 남아 있으면 가족끼리의 온전한 화합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삶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요셉의 형들도 요셉을 판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있었습니다.

후회함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죄책감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요셉에 대한 일을 가능한 한 그 일을 생각지 않고 요셉을 생각나게 할 수 있는 환경들은 피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요셉과의 일치됨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상처를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드러내고 아픔이 있더라도 째고 수술을 해야만 완전히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신이 당했던 것과 같이 억울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을 판 사건을 그들의 마음속에서 끄집어 내게 하는 것입니다.

형들에게 괴로움을 줌으로써 자신들의 존재와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게 하여 진정한 회개에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양식 때문에 예수님을 찾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달라고 하는 육신의 양식이 먼저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존재가 어떤 자들인지를 깨닫게 유도하십니다.

달라고 하는 육신의 필요한 것들은 주시지 않고 우리를 고민과 괴로움 속으로 몰아가십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오히려 내가 가진 것들을 빼앗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심령 깊은 가운데서 숨겨 놓은 모든 죄에 대한 고백이 나오게끔 만드십니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만큼 추악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가게 하십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벌레만 못한 이 죄인” 이란 용어가 마음에 저밀듯이 다가오지  않는사람들은 아직까지 복음을 제대고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저 종교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의 실상들이 들어납니다.

그 실상이 드러나기까지 십자가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비록 당장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 괴로움과 고민의 시간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더욱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떠나게 되면 우리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지금 요셉이 그의 형들을 몰아붙이는 가운데 점점 형들은 자신들의 실상을 알게 됩니다.

몰래 마음 깊이 숨기고 덮어 놓으려고  했던 죄악들이 모두 드러납니다

이런 과정과 절차를 통해 요셉이 가진 축복과 권세가 형들에게 점점 전달되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심문하고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잠재의식속에 있던 요셉에게 한 행동들을 진심으로 뉘우칩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저 마음 깊이 묻어두고 사는 때가 있습니다.

“괴로우면 주를 보라” 말이 있습니다.

참된  성도는 괴로움의 과정 속에서도 "그동안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너무 잊고 있었구나. 아 예수님께서는 그 영생의 원천을 다시 깨닫게 하시는구나"라고 자신의 마음을 되돌리게 됩니다.

 

이런 십자가 아픔을 사이에 놓고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리는 영광을 함께 누릴 수가 있습니다.

 

 기     도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만 주님을 찾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를 생각하게 하사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누리는 영광에 동참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2: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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