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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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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4. 00:00

<창세기 41:46~52> 므낫세와 에브라임 이름에 담긴 뜻

 

 성경말씀 : 창세기 41:46~52

 

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말씀묵상

 

요셉의 꿈 해석대로 애굽에 풍년이 찾아 왔습니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많을 정도로 대풍이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책무를 다하는 가운데 두 명의 자녀를 갖습니다.

첫째를 므낫세라고 이름하고 둘째를 에브라임이라고 명명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녀의 이름 안에는 작명인의  마음과 사상 그리고 소원이 담겨 있습니다.

므낫세란 이름에는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요셉이 아비의 집으로부터 애굽으로 팔려와 겪어야 했던 인고의 세월을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이 너무 커서 지난 날의 험악한 세월을 가리우고도 남을 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현재의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고난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요셉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얘기합니다.

시편 기자의 표현대로 영혼을 쇠꼬챙이로 찌르는 둣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 모든 과정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 온 것입니다.

또한 이 영광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하는 겸비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영화를 누리다 보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그 자체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가 되었지만 과거에 고난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있으며 현재의 영화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에브라임이란 이름의 뜻에는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수고란 단어는 원문상의 뜻이 고통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통의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이미 총리가 되었고 아내와 두 아들을 얻으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애굽을 ‘고통의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요셉이 애굽은 자신이 영원히 거할 도성이 아니라 잠시 거쳐가는 ‘수고와 고통의 땅’에 불과하며 애굽의 안락을 제공하는 애굽보다 더 가치 있는 땅 즉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의 땅’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 쓰인 ‘고통’ 이란 단어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받았던 고통을 표현할 때도 동일하게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에서 받은 고통의 경험이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애굽에서 받을 고통의 전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비록 총리로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의 맘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유언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성도의 삶은 외국인이요 나그네와 같습니다.

나그네의 삶은 요셉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간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고 소망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처소이며 현재 내 삶을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입니다.

 

 기     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집을 소망하며 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1: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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