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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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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3. 5. 00:00

<창세기 37:21~22> 죄인이란 의식이 십자가 고통에 참여케 합니다

 

 성경말씀 : 창세기 37:12~20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말씀묵상

 

요셉이 자기들에게 오는 것을 보고 그의 형들은 요셉을 죽일 궁리를 합니다.

그런데 가장 맏형인 르우벤이 반대를 합니다.

21절을 보면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해치지’ 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문의 뜻은 ‘갈기갈기 찢다’ 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일 궁리를 하며 갈기갈기 찢어 죽일 계획까지 세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이런 표현을 한 것은 그의 형제들이 하는 일이 대단히 사악하고 잔혹한 짓이라는 것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또한 맨 끝에 쓰인 ‘말자’ 라는 표현도 한시적인 금지가 아닌 영원한 금지를 뜻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즉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는 일은 지금뿐 아니라 영원히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만큼 르우벤은 형제들의 음모를 막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르우벤이 요셉을 죽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요셉을 살리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얼마 전 발생했던 서모 빌하와의 간통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르우벤이 비록 순간적인 성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죄악은 저질렀지만 아비의 여자를 범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혐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사건을 알고서도 듣기만 했습니다.

분노하거나 그 죄 값에 상응하는 징계와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르우벤으로 하여금 더욱 큰 죄책감을 가지고 살게 하였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를 때 그나마  죄책의 중압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 이후로 르우벤은 자신이 죽임을 당할 죄인임을 철저하게 자각하며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죄값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은 살아 있고 아무 죄도 없는 요셉이 죽게 된 것에 더욱 큰 가책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형제들 몰래 끌어내어 요셉을 아버지에게 보내려고 구덩이에 넣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을때 그분을 환영하고 영접한 사람들은 세리와 창기와 같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자각하지 못하고 자칭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은 핍박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자리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임을 알고 그분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가슴 아파한 것입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죄를 지어야만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자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과 같은 높은 도덕적 기준을 말씀하신 것도 그 당시에 표면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율법의 기준이 무엇인지 제시함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의인인줄 알고 계속 착각하며 살았던 것이며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데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십자가의 사건을 대할 때 눈물과 감격이 없는 것은 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늘 우리가 죄인이란 얘기는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저 교리적인 지식으로만 알았지 나의 삶속에서 깊이 깨달아진 실존적 지식으로 다가 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표면적인 죄악들을 짓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적인 기준에서 볼 때 어느 정도 선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과 같이 인간이 지키기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말씀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본래 원하시는 삶의 기준이기에 지키려고 힘을 써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죄악과의 싸우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이란 사실이 실존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것이 이미 살인한 것이며 음란한 생각이 곧 간음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진정 믿을진대

우리는 르우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나의 그 죄때문에 내가 매달려야만 될 그 자리에 우리 주님께서 대신 매달리사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기     도 

 

 

 

 

하나님 앞의 죄인이란 실존적 자각을 가지고 십자가 사건을 대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7: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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