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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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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12. 00:12

<창세기 3:6> 우리를 유혹하는 사단의 전략

 

 성경말씀 : 창세기 3 : 6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멘)

 

 말씀묵상 

 

오늘 본문에서는 하와가 사단에게 유혹 당하여 범죄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와가 범죄하기 전 단계에서 유혹에 넘어가는 그녀의 상태를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웁기도 한 나무인지라”

바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대변되는 이 세상의 욕망을 통해 하와는 마침내 사단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고야 만것입니다.

또한 하와를 범죄에 빠뜨리게 한 사단은 바로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계속하여 인류를 유혹해 왔습니다.

제 2의 아담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시험받으신 내용도 바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먹음직 하다는 것은 단순한 식욕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 하나님이 말씀보다도 더 좋게 보이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금령의 대상이 먹는 것이었기에 먹음직하다고 표현한 것이지 원뜻은 선악과에 대해 금령을 내리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게 할 만큼 아주 좋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즉 먹음직 하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좋게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하시는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는 육체의 모든 소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것을 육체의 정욕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단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성경에 약속한 하늘나라의 신령한 것보다도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것들이 더 좋아보이도록 우리를 계속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보암직 하다는 뜻은 눈으로 보고 즐거워 하며 그것을 탐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즐기는 가운데 그것을 탐하는 마음이 생겨 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것을 안목의 정욕이라 표현하였습니다.

눈은 그 기능상 오감중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감각기관인데, 인간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인지하는 통로중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범죄에 이르게 하는 통로가 오감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그 대표격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결국 꼭 눈뿐만 아니라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하나님이 원치 않는 탐심을 품는다면 그것은 안목의 정욕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범죄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이고 중요한 단계는 육체의 정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논리적 순서상으로 생각 할 때는 안목의 정욕이 먼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선악과를 먼저 보고 보암직했기에 뒤에 먹음직스러웠을 것입니다.

물론 시간적으로는 순서를 논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러한 면을 생각하여 세상의 정보을 받아들이는 여러 요소들을 사용함에 있어 늘 조심하되 특별히 눈으로 보는 것에 각별한 유의가 필요합니다.

사단은 분명 시각적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는 현대의 영상대중매체를 통해 얼마든지 우리로 하여금 안목의 정욕에 빠지도록 유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넓은 아파트, 비싼 가구와 자동차, 섹시한 남녀들 등을 보며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지 못하며 그것들을 부러워 하는 탐심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에서 지혜롭게의 원어뜻은 총명함을 넘어 모든 것에 통달하고 형통한 완전함을 말합니다.

즉 인생의 자랑거리가 되는 모든 것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먹으면 모든 것이 형통해지고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완전하게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짐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열망이 더욱 강렬해진 것입니다.

하와의 이러한 행태는 인간이 스스로를 높이는 자존감의 발로요 교만의 시초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높여 줄 수 있는 세상의 자랑거리들, 요한은 이것을 일컬어 이생의 자랑이라 표현했습니다.

그것이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이든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면 모두가 이생의 자랑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는 권력, 재물, 학벌, 명예, 외모, 재능등 이 세상에 속한 것들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랑거리를 삼고자 합니다.

이생의 자랑거리들은 인간 자존감을 높이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외칩니다.

당신은 십자가만을 자랑 하십니까?

당신이 사랑하는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으셨읍니까?

 

 기     도 

인류를 타락에 빠지게 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사단의 유혹을 이기게 하소서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치 말게 하시고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마음과 행동으로 그 고백을 뒤 받침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장 7~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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