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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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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2. 4. 00:00

<창세기 33:1~10> 하나님의 얼굴을 본 후 야곱의 변화

 

 성경말씀 : 창세기 33:1~10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말씀묵상

 

브니엘에서의 하나님의 얼굴을 경험한 야곱이 걸음걸이는 비록 절룩거리고 걸었을지라도 그의 마음엔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형 에서를 보는 순간, 가족 일행들을 앞질러 나가 에서를 맞습니다. 

야곱이 그의 소유와 가족들을 배치한 것을 보면 여차하면 소중히 여기는 자들부터 도망치게 하려는 술수 같이 보이나 자신이 그 일행들을 앞질러 에서에게 나간 것을 보면 그 의도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당시 사회에서 귀한 사람에게 가족을 소개할 때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을 나중에 소개시키는 서열 방식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과 자기 의를 내려놓습니다.

자기 생명과 생존을 형 에서의 처분에 맡깁니다.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33:3).

몸을 땅에 기다시피 하는 모습으로 형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이나 절하면서 말입니다.

위선적이고 비굴한 마음에서가 아닙니다.

제일 꼴불견스러운 것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자기 자존심 때문에 당당한 척 행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진심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화해를 간구했습니다.

그런 뜻에서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고대에 정복자와 왕 앞에서 행하던 자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에서가 형이긴 하지만 나이 차가 없는 쌍둥이입니다.

그렇게 군신간의 예의를 차릴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것을 기꺼운 마음으로 행합니다.

원래 야곱이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허리를 굽혀 자신의 자손심을 상하게 하는 것을 허락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브니엘에서의 경험은 야곱을 이렇게 겸손하고 온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진정 타인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삭을 통하여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때 에서가 야곱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히려 야곱이 에서에게 절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야곱이 에서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절하고 있는 그 행동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섬김을 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즉 섬김을 통하여 섬김을 받는 역설의 진리가 오늘 야곱의 행동을 통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에 젖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섬김을 받으며 대접받는 것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남에게 머리 숙이는 것을 비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지금 야곱은 자신이 실제로는 에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데 겸양의 미덕을 나타내기 위한 높은 마음으로 형 앞에 엎드린 것이 아닙니다.

에서의 자비를 구하는 낮은 마음으로 엎드린 것입니다.

브니엘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통해 야곱의 자존심은 산산히 부서지고 그는 진정 낮은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받은 장자의 축복 안에는 바로 이런 역설의 진리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가난함으로 부해지고, 약해짐으로 강해지며, 죽음으로 살아나고 패함으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요 야곱은 씨름에서 패하여 절룩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이것은 패배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승리자 이스라엘이 되엇습니다.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야곱은 절룩거리며 패배자 모습으로 에서에게 나타납니다.

에서가 그러한 야곱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떠한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야곱의 모습을 바라보는 에서의 마음에는 과거의 적대감과 분노, 그리고 그에 대한 경계심보다는 측은한 마음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 예물 때문이 아니라, 야곱을 철저하게 낮추신 하나님의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얍복강가의 씨름을 통해서 야곱의 인격을 만지셨던 것입니다.

또한 당시는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환도뼈를 내리쳤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가 그 안에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녹아내린 형 에서가 동생 야곱과 그 가족들을 긍휼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33:5)

 

 “은혜”는 모든 주도권의 행사가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과 하나님께 있음에 대한 겸손한 신앙 고백적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이들입니다.

언제나 부족함을 가진 죄인의 위치에 자신을 두기에 사람들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기 의를 여전히 버리지 못한 채, 오만과 독선의 극치를 달리는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들입니다.

겸손한 야곱의 표현에 형 에서의 마음은 더욱 부드럽게 녹아내립니다.

그는 야곱을 향해 “내 동생아”라고 다정스럽게 부르면서,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33:9)며 사양합니다.

야곱의 예물이 자신에게 필요치 않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로간의 진정한 화해는 그 사이에 속된 이권이 오고 가는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그 예물이 야곱에 대한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영향력을 끼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화해의 기쁨과 눈물의 용서가 있는 곳에 그 예물은 이미 관심 밖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와서 그 예물 때문에 자신이 동생을 용서한 것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 역시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33:10).

야곱은 용서를 비는 예물이 아니라, 용서를 입은 자로서 자기 마음을 담은 감사의 예물로써 고백합니다.

야곱은 물질로 인해서 형의 용서를 받은 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용서의 기쁨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예물 때문에 형이 마음을 돌이켰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33:10).

형의 얼굴에 나타난 따뜻하고 친절한 우애 속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빛을 보았다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복수심에 가득 찬 형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자신을 영접토록 주장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한 진정한 신앙인이 펼쳐가야 할 참된 인간관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백이며 증언입니다.

잘못해놓고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되새겨볼 때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이들은 사람들 앞에 철저하게 엎드리는 것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     도 

 

 

 

 

내 안에 있는 쓸데 없는 자존심들을 깨뜨리사

주위의 사람들을 진정 섬길 수 있는 낮은 마음을 주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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