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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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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1. 19. 00:00

<창세기 29:31~35 ①> 라헬이 되고 싶지만 레아일 수 밖에 없는 인생

 

 성경말씀 : 창세기 29:31~35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말씀묵상

 

야곱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 레아는 자녀를 생산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라헬처럼 남편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야곱으로부터 레아는 여전히 라헬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햇습니다.

그리고는 자녀들의 이름에 라헬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들을 담아 냅니다.

그녀는 라헬이 되고 싶었지만 여전히 레아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라헬이 되고 싶지만 레아일수 밖에 없는 한 여인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그려 내고 있습니다.

레아는 르우벤과 시므온, 그리고 레위를 낳고 그 자녀들의 이름에 라헬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레아는 자식을 많이 낳아도 야곱의 마음을 얻지 못햇습니다.

그녀는 결코 라헬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를 낳은 후 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요.

그녀는 이제 남편에게 향하던 자신의 눈을 여호와께로 돌립니다.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고 여전히 레아로 남아 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라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에게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를 라헬로 여기겠다. 너는 나의 라헬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바로 그 의미를 넷째 아들 유다의 이름에 담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그 예수님으로 인해 레아와 같은 우리가 라헬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귀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어디에서나 사랑받고 인정받는 라헬로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 자체가  라헬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라헬로 여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왜 복음이 됩니까?

십자가를 통해 레아와 같은 우리가 라헬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허상인 라헬이 아니라 하늘의 진정한 라헬이셧습니다.

그분은 모든 복과 기쁨의 원천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라헬이 이 땅에 레아로 오셔서 질시와 고초를 당하시며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은 바로 레아로 오신 메시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라헬이신 그분이 이 땅에 레아로 오신 것은 이 땅의 레아인 우리를 하늘의 라헬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라헬로 여겨 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라헬로 여겨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라헬이 아닙니다.

라헬인척 하는 것 뿐 입니다.

결코 그 라헬은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공허를 채워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라헬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자기가 라헬인양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라헬이 될 수 있다고,  라헬을 얻을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 일 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결코  라헬을 얻을 수도 없고 라헬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저들에게 유익을 끼쳐도 세상은 결코 우리를 라헬로 여겨 주지도 않습니다.

저들의 라헬의 기준이 외모가 곱고 아리따운 것이지 아이를 잘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라헬이 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라헬이 되어야만 한다고 압박하고 강요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의 라헬이 되지 못하고 라헬을 얻지 못한 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위축시키려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하여

나는 이미 라헬을 만났다고 증거해야 합니다.

나는 이미 라헬이 되었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노예와 같은 천민들을 로마제국의 황제보다 더 당당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복음의 충족성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기     도 

 

 

 

 

세상의 라헬이 되지 못했다고 위축되거나 비굴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하시고

복음을 가진 자로서의 당당함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9: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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