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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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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1. 2. 00:00

<창세기 26:17~22> 르호봇의 복

 

 성경말씀 : 창세기 26:17~22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말씀묵상

 

우리는 치열한 생존 경쟁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 살아 남을 수가 있습니다.

남에게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 그렇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오히려 양보를 너무 잘 하면 어리석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쟁의 세상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법칙대로 따라 살아 갑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내 것을 움켜지며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 속에서 “오리를 가고자 하면 십리를 동행하고 겉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내 주라” 는  주님이 말씀이 도대체 현실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건 그냥 성경 말씀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도태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는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아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면 우리 삶에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경험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삭이 그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삭이 하나님이 주신 풍성함때문에 시기함을 받아 그랄 왕으로부터 쫓김을 당한 이후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팝니다. 

그 지역은 물이 흔하지 않았기에 우물은 생존과 연계된 것이었습니다.

어디든 가서 정착하려면 우물이 존재여부를 확인하고 없으면 우물부터 파야 그곳에서 살아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물을 파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과 경비가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우물 하나를 놓고 부족끼리 전쟁도 불사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새로운 장소에 가서 우물만 파 놓으면 그랄 사람들이 와서는 자기네 것이라고 우깁니다.

당시 이삭은 많은 종을 거느리고 있었기에 그 사람들과 싸워서 우물을 지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사람들에게 우물을 주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또 우물을 팠습니다. 

사실 새로 옮겨 가는 지역에서 우물이 터져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양보하였고 르호봇이란 곳에서 우물을 판 이후엔 더 이상 그랄 사람들도 우물을 빼앗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그들과 적극적으로 싸울 수 없었던 것은 이삭은 그 땅의 나그네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땅에서 소유하는 것들은 임시이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삭이 지금 기거 하는 그랄은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하나님께서 임시로 머무르게 한 가나안과 애굽의 경계지역입니다.

그는 원래 자신이 살던 가나안의 깊은 지경으로 다시 가야만 했습니다.

어차피 나중엔 놓고 가야 할 것인데 그렇게 아귀다툼을 해가면서까지 내 것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삭은 그랄 땅에 와서 기근 가운데서도 풍성함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사람의 먹고 사는 것이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자신과 그 가족의 생존은 우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 있음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생존을 위한 좋은 조건을 지닌 넓은 지역, 르호봇에서 우물을 파고 살 수 있게 됩니다.

그곳은 지금까지 거쳐온 에섹이나 싯나보다 훨씬 더 좋은 지역이었습니다.

양보하면 손해를 봐야 하는데 잃어버려야 하는데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소실대익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며 지나친 경쟁의식을 가지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나그네 의식의 부재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지킬때 우리는 르호봇의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     도 

 

 

 

치열한 생존경쟁의 법칙에 너무 얽매이지 말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6: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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