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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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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1. 1. 00:00

<창세기 26:1~16> 계시의 점진성

 

 성경말씀 : 창세기 26:1~16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말씀묵상

 

오늘 본문을 보면 이게 이삭의 삶인지 아브라함의 삶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정도로 이삭은 그 아비 아브라함의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왜 동일한 인간의 실수를 반복하여 기술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변함없는 불가능함에 관한 확인 도장 같은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보다도 더 좋은 여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은혜를 입히지 아니하시면 이런 존재라는 것을 성경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인간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까지 기필코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섭리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역사에 대한 반추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사를 공부하고 신앙 선배들의 자취를 왜 배웁니까?

그들의 경험을 내 경험으로 삼아 백지 상태에서 신앙의 출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가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독불장군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신앙의 선배들이 쌓아온 영적인 유산들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역사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반추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삭을 막으시고 애굽과 가나안 땅의 경게인 그랄에서 머물게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한 이삭에게 많은 복을 주십니다.

목축업에서의 번성뿐 아니라 경험이 없었던 농사를 지어서도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성경은 이 상황을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풍요의 대표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던 물질적 부를 들어 순종의 삶에 부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것을 순종=복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내어 순종하기만 하면 이 땅에서 만사형통 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뒤의 내용을 보면 이삭이 거부가 된 후에도 계속해서 그랄 왕과 목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아 쫓겨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삭이 거부가 된 후에고 쫓기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 이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얻은 것이 진정한 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시를 처음부처 확연하게 드러내어 보여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모형으로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다가 후대에 오면서 그 계시의 원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 주십니다.

이것을 계시의 점진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도 아담에게는 여자의 후손으로 알려주시고 제사를 통해 여자의 후손이 와서 이루실 일을 희미하게 보여주셨으며 모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성막과 제사를 제도화 시킴으로 자신들의 죄로 인해 짐승이 죽어 간다는 사실로 조금 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셧으며  바벨론 포로 이후 묵시시대에는 이스라엘을 구원 할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모세 시대보다는 더 나아가 메시아관을 심어 주셨으며 신약에 와서는 바로 아담에게 약속하셨던 여자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는 것을 만 천하에 완전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성도들이 천국의 대한 관념도 신약시대만큼 구체적이고 명확치 못했던 것은 그 시대에는 그만큼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계시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을 향하여 심판이 더 클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확실히 드러난 계시를 보고서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의 복과 풍성함도 구약시대에는 복의 원형 그 자체를 분명하게 보여 주시시 않으시고 이 땅의 눈에 보이는 재물과 장수의 복으로 하늘 나라의 풍성한 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사 하나님 나라의 복을 희미하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신약시대에 에수님이 오셔서 팔복을 말씀하심으로 구약에서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던 이 땅에서의 복에 대한 실체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엔 구약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 땅에서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설명한 곳이 없습니다.

구약을 읽을때 계시의 점진성이란 개념을 생각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에 많은 혼선이 오게 되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게 됩니다.

십일조 생할을 잘하고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분명 복된 삶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시대와 같이 그런 사람들이 모두가 부자가 되고 눈에 보이는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복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팔복이 진정한 복임을 우리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적 의미에서 만사형통이란 육신의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지 요셉과 같이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며 동행하시는 삶을 말합니다.

기왕이면 예수 믿고 이 땅에서도 눈에 보이는 복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신·구약 전체 맥락에서 읽지 못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우리의 본성에 부합되는 본문만 좋아하게 되는데 이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부해질수도 있고 가난하게 될 수도 있고 건강하게 될 수고 있고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재능이 많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자꾸 물량주의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능이 있고 돈이 있는 것을 은사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은사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이 땅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모든 포지션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대통령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지만 어떤 이는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어떤 이는 건강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지만 어떤 이는 장애자로 태어나 하나님께 영광를 돌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능력 주시는 자의 안에 있기에 바울은 부함에 처할줄도 알지만 비천함에 처할줄도 알며 어떤 상황에도 모두 자유롭게 처 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정 복음의 능력과 영광을 맛본 사람의 고백입니다.

 

 기     도 

 

 

 

구약의 족장들을 보며 그들에게 주어진 재물의 복에만 우리의 관심을 갖지 말게 하시고

그 복의 실체인 에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영적 원리를 사모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6: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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