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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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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9. 00:11

<창세기 2:8~17 > 에덴동산의 관리자로서의 인간과 선악과 언약

 

 

 성경말씀 : 창세기 2 : 8~17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말씀묵상 

이제 하나님께선 사람이 기거할 땅인 낙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을 사람이 경작하며 지키게 하십니다.

경작하다라고 번역된 ‘아바드’ 는 ‘일하다’ 다스리다‘  ’봉사하다‘ ’섬기다‘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애정을 가지고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동산을 힘써 가꾸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정복자로서의 다스리는 위치가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보존하는 위치에 인간이 서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인류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무차별적인 개발을 진행해 왔습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환경오염의 문제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다스린다는 것을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는 차원에서 생각하지 않고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의 군림과 정복 개념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적이고 범신론 차원에서의 자연보호는 배격할 일이지만 지구를 관리하는 청지기 차원에서의 환경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에덴에서의 경작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것이 더 있는데 에덴은 결코 무위도식 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동산을 경작하는 일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흔히들 노동은 타락의 결과 저주로 생긴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타락 전부터 하나님은 노동을 제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타락의 결과 노동에 고통이 뒤따르게 됐을지라도 모든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노동을 천히 여기거나 3D업종을 기피하는 현상도 모두가 비성경적인 이방세상의 사상입니다.

혹시 이런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자신 스스로가 그런 의식에 젖어 있지 않도록, 그러한 유의 직업군이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의 구조적인 악이 개선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17절을 보면, 우리가 흔히 의문을 갖는 내용인데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시고 먹지 말라고 하신 것에서  인간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격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격적이라 함은 자유의지가 있음을 말합니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과교제의 대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제 자유의지란 그것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져야만 참된 자유의지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인간의 순종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선악과가 없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혀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면 그 자유의지는 참된 자유의지라 할 수 없습니다.

즉 사람이 인겨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안에 이미 자율적 순종여부의 척도로서 기능하는 선악과 존재의 필연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보며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의 중앙에는 선악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강제로 우리를 끌고 가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스스로 자원하여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도 문밖에서 기다리시며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기를 간절히 요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기     도 

지금 이 시간에도 문밖에서 애타게 기다리시며 노크하고 계시는

우리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지금 삶의 현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인지 상관없이

그 일들에 대하여 감사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일하는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살게 해 주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장 18~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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