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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7. 00:00

<출애굽기 2:11~14> 인간의 열정과 재능으로 하나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말씀 : 출애굽기 2:11~14

11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말씀묵상

모세는 이제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 애굽의 궁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나 유모 요게벳의 교육으로 그는 애굽의 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히브리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히브리인들이 노역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보게 됩니다.

거기서 지나치게 히브리인을 학대하며 감독하는 애굽의 관리를 죽였습니다.


이러란 행동을 하고 있는 모세의 성향을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히브리인라는 정체성이 분명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동족이라고 생각했기에 애굽인의 행동에 분노가 치솟아 오른 것입니다.


둘째는 그가 생래적으로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보게 되겠지만 그가 미디안 광야에 가서도 연약한 여자 목동들을 괴롭히는 남자 목동들을 쫓아 내주는 행동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은 어디 가든지 옳지 못한 일을 보면  남의 일이라도 참견을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천성적으로 좋은 지도자의 성햐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세째는 그의 상태가 아주 자신감과 열정에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분노가 솟아올라도 뒷 감당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애굽의 관리를 죽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의 왕자라는 신분때문에 자신감과 열저이 지나치게 충천해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이러한 성향과 행동을 보며 생각나는 사람이 없습니까?

바로 레위입니다.

모세가 레위지파 부모에서 태어난대로 그의 선조 레위를 닮은 면이 많습니다.

 

자신의 여동생 디나가 세겜 족장에게 강간을 당한 후  그 의분에 못이겨 세겜의 남자들을 죽이는 일에 주동이 되었던 인물이 바로 레위였습니다.

레위는 야곱의 어정쩡한 태도에 실망을 하며 이스라엘이 치욕을 당했는데 가만 있을 수가 있느냐? 라며 세겜 학살 사건을 주도합니다.

즉 레위는 동생 디나가 당한 것을 집안 전체의 수치로 보았습니다 .

야곱 집안에 소속 되어 있다는 정체감이 매우 분명한 태도인 것입니다.

또한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정의감으로 세겜 대학살을 이끈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의 이 행동 때문에 그는 야곱의 유언에서 저주에 가까운 예언을 받지 않았습니까?


성경이 이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부름을 받기 전 모세의 상태를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비록 그가 자신감과 열정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궁에서 쌓아올린  모든 학문과 경력들이 그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했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모두 버려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아마도 모세는 그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쿠테타라도 일으켜서 자신의 동족을 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하나님이 쓰실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은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경력과 업적 그리고 자신감, 열정이 무너지는데부터 시작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원리를 간파하고 있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약에 모세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쿠테타라도 일으켜 자신의 동족을 구출했더라면 이스라엘 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아무 상관없는 민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가 자신의 동족을 위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은 그를 광야학교로 보내기 위한 수순을 밟습니다.


다음 날 히브리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만류하자 오히려 히브리인들이 네가 우리의 심판관이라도 되느냐고 대듭니다.

그리고는 모세가 애굽 관리를 죽인 일을 고해 버립니다.

그 일로 인해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신 광야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중의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직 출애굽할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자신들을 학대하는 애굽 관리를 죽여준 모세가 그들에게는 고마와 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싸움에 개입했다고 해서 분을 내는 것입니다.

그들 속에 얼마나 질긴 자존감이 존재하고 있나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남한테 참견받기 싫어하는 마음이 사실을 죄의 뿌리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심리 근저에 있던 마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참견없이 내 뜻과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

내 삶의 영역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자존심이란 것이 대부분 이것에 해당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보십시요 아직 그들이 순진하고 착함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참견과 잔소리를 싫어하는 성향들이 그들 안에 내재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다 인간의 죄악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악의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문학에서 말하는 휴머니즘에 익숙해지다 보면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실상에 대해 간과하기가 쉽습니다.


잔소리 듣는 것을  싫어하지 마십시요.

그것이 성화해 가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단계입니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불충한 말인줄 아십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서 인간적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생래적인 인간의 실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너희들 아직 멀었구나 좀더 바로 밑에서 고생해야겠다 모세도 광야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고 너희는 이곳에서 훈련을 받아겠구나 그 훈련이 끝나고 너희들의 자존감이 다 무너졌을 그때 내가 일을 시작하마“ 라고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 지금 우리에게도 들려오지 않습니까?

 

 기     도 

우리가 쌓아 놓은 것과 인간의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 일을 하지 말게 하시고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자아들을 깨지게 하사 우리 안에서 온전한 주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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