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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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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9. 10. 00:00

<출애굽기 19:7~15> 시내 산 언약의 체결 준비

 

 성경말씀 : 출애굽기 19:7~15

  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14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을 성결하게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15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준비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하니라

 

 말씀묵상

이스라엘은 끔찍한 노예살이에서 벗어난 것으로 끝낼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신적인 특혜를 입은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그 끝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나은 미래,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가는 것이 그들의 삶의 주된 과제인 사람들도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온 세상 모든 민족의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애굽에서 거리와 시간 상 제법 멀리 떨어진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시고,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만나시려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림하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을 만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백성들 편에서 미리 준비해야할 것들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준비할 가장 우선적인 것은 “성결”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 동안’ 자신을 “성결”하게 할 것을 명받았습니다.

성결에 관한 규례는 출애굽기 이후 계속하여 성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사항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해진 ‘성결’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10절, 14절에 기록된 대로 “옷을 빠는 것”이었습니다.

옷을 세탁하는 것은 외적으로 단정한 모습을 갖추라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또한 내면적으로 깨끗하게 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옷을 빠는 것은 심령의 준비, 내면의 준비도 함께 하라는 뜻이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된 두 번째 성결은 15절에 기록된 대로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쾌락이나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 예배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고 우선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할 성도에게 준비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내면의 자세는 ‘하나님을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해가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배를 위해 이렇게 준비된 마음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준비된 자세로 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고 하면 필시 그것은 자신의 감정적 경험이요 사단이 주는 거짓 기쁨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백성들이 준비할 것이 이렇게 두 가지라면, 모세가 공적으로 준비할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2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대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좀 더 구체적으로 하면, 시내산에 “경계”를 정한 후, ‘접근금지’를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 너만 나오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나오라”고 하셨으나, 백성들에게는 주의 사항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 경계를 넘어 산에 오르거나 지경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경계를 넘으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장막과 하나님의 산 호렙을 구분하는 울타리를 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 간격, 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간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존재 자체의 차이요, 상태의 차이였습니다.

존재의 차이란 신과 인간의 차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차이를 말하며, 상태의 차이란 범죄하여 타락한 인생과 거룩한 하나님의 차이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어떻게 이것만으로 설명이 되겠습니까?

그 차이와 간격은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경계를 두라 하신 이유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역에 분별없이 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자신을 동일한 수준으로 여기는 망령된 짓이요, 용서 받을 수 없는 경거망동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죄는 “죽임을 당해 마땅한 죄”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거룩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 소멸되지 않도록 경계를 정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결국 경계를 정하고 그것을 넘지 말라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차이와 구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가운데서 보호하셔서 시내산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 보호하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     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우리의 눈으로 보게 하시며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9: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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