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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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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5. 11. 00:00

<창세기 48:8~22 (2)>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성경말씀 : 창세기 48:8~22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말씀묵상

 

야곱은 요셉에게 축복을 간구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을 당신을 계시할 때 이 호칭으로 계시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2:32)

이처럼 성경이 하나님을 호칭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호칭 안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을 모두 체험하는 것이 필요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람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였을 때 그는 부르심을 받아 그곳을 떠나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곳을 향햐여 순종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 미리 아시고 택하여 불러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란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 서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밖에서 부르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물쭈물 거리면 구원의 대열에 들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의 집에서 이삭을 소개할 때 그 아비의 재산이 전부 그 아들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삭의 생애는 아브라함이나 야곱에 비해 비교적 평탄한 삶을 보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시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즉각 순종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했을 때 주어지는 풍성한 은혜의 체험을 말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원하시는 위치까지 이끌고 가신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 안에 남아 있는 옛 자아들을 온전히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의 삶이 고난이 주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보십시요, 다른 어떤 족장보다 그는 더욱 험난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뜻에 온전히 굴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성도의 삶에도 이런 과정이 필히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경험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경험 하나라도 빠지면 온전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이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은 그 세 족장을 통하여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이 하나님을 그렇게 호칭하고 있는 것은 지금 요셉에게 주는 축복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주어진 약속이요, 그 약속이 후손들을 통해 성취될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기억할 것은 성경에 말씀한 모든 약속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 갈 것이란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살자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사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15-16절에서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을 하는 장면을 보면 그 축복의 내용이 모두 조상 때부터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6절)

 

축복이라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이 그의 생애를 통해 이루어지는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축복을 이야기 할 때 세상에서의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지만 족장들의 축복을 보면 자신들이 이 땅에서 원하는 삶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호칭에서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보는 것입니다.

 

 기     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을 우리가 모두 경험케 하시고

우리의 생애가 성경에 말씀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통로임을 늘 잊지 않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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