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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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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5. 7. 00:00

<창세기 47:13~26 (3)>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습니다

 

 성경말씀 : 창세기 47:13~26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말씀묵상

 

 

본문의 22절을 보면 요셉이 백성들에게는 양식을 사기 위하여 자기들이 가진 가축과 전답을 모두 가져오라고 하였으면서도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제사장들은 바로왕으로부터 곡식을 녹으로 받기 있었기 때문에 곡식을 사기 위해 구태여 요셉에게 거서 땅을 팔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요셉이 양식을 주는 댓가로 전답을 요구하는 것은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고 그것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응당 제사장들의 토지도 몰수 하는 것이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임에 분명했습니다. 
우리의 고려나 조선시대 역사를 살펴보십시요. 
특권층이 사유지를 많이 소유할수록 국가의 힘은 나약했고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강력한 군주가 나와 특권층이 누리는 혜택을 몰수하고 국가에 귀속시키고 국가의 재정을 튼튼히 할 때 오히려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요셉도 양식을 사는 댓가가 아닌 다른 법령을 제정해서라도 제사장들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키고 그 땅들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농사짓게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바로가 요셉에게 자신의 절대 권력을 전적으로 위임했기에 얼마든지 그 일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제사장들의 땅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일단은 그들이 받고 있는 양식이 바로에게로부터 받고 있는 정당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별한 법령을 제정하여 강제로 제사장들의 땅을 몰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가운데는 왕족들도 많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러한 정책을 시행할때 오는 저항과 반발이 오히려 국가를 분열시키고 결국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판단을 요셉이 한 것 같습니다. 
실질적인 국가의 유익이 없는데 요셉이 구태여 제사장들의 땅까지 강제적으로 몰수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국가의 창고가 풍성해지고 부유해진 것은, 양식의 절대적인 필요에 의해 백성들 스스로 판 전답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요셉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백성들의 행렬에 동참하여 제사장들이 스스로 그 토지를 국가에 반납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로부터 녹을 받고 있었으면서도 국가가 잘 되어야 자신들도 잘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를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것을 내 놓기 싦어서 그랬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진정 나라의 은혜를 알고 있었다면 백성들의 토지 반납 행렬에 함께 동참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행복과 국가의 이익이 서로 부합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였습니다.

결국 그들 스스로 그 일을 하지 않았고 요셉도 강제로 그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제사장들의 전답을 강제로 국가에 귀속시키지 않았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제로 이끌고 가시지 않습니다. 
그 강제적인 방법이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누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먹을 양식이 풍족하여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억지로 가난한 맘이 되게 하시지 않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이 풍부하냐? 
그러면  그 양식 가지고 나한테 올 필요없이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없이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간절한 사모함이 있는 자만 당신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그 심령만이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가난한 심령을 하나님께서 강제로 만드시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가난한 심령이 되도록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이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 (마11:12)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에 있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천국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순간 이루어지는 것은 천국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우리 인간의 힘과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치 어떤 물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출발할 때 가장 많은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의 힘이나 의지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그 천국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침노해야만 합니다. 
가난한 심령이 되도록 자신의 소유들을 포기하고 주님께 그것들을 드려야만 합니다. 
양식을 위하여 요셉에게 자신들의 모든 소유물들을 갖다 바치었듯이  말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와 힘을 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
감나무 밑에서 입벌리고 있다고 감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일어나서 수고를 하여 그 감을 따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로부터 받은 양식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국가로부터 공급받은 그 양식으로 인해 가난한 심령이 될 수 없었습니다. 
요셉에게 가서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니 팔고 싶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분명 제사장들이 받은 양식은 국가로부터 받은 녹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도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신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주님에게 찾아가 양식을 위해 애걸하는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더 깊은 은혜를 위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 간절함은 완전한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한 사모함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의식속에서 내가 주님의 종이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의 종일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를 것이 아니라 종님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25절에 나타난 백성들의 태도를 보십시요.
그들은 진심으로 요셉의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들을 모두 갖다 바치라고 한 요셉의 선한 의도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소유들을 포기하고 요셉에게 갖다 바침으로 자신들의 삶이 진정으로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의 은혜를 입었사오니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스스로 청합니다. 
즉 이것은  바로의 권세를 위임받은 요셉의 밑에서 기꺼운 마음을 가지고 종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의 종이 되는 것이야 말로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되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그 태도가 바로 기근을 통해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원하셨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의 종이 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오직 나라가 주는 혜택만을 만끽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과 같이 양식을 위해 자신의 것들을 포기하는 아픔과 고통이 없었기에 그 양식이 얼마나 값진 것 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사장들에게는 백성들과 같은 감격과 감사가 없었습니다. 
나라의 부요가 자신들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다.
그래서 그 나라를 위해 종이라도 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마지막절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제사장들은 국가의 녹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사리사욕을 챙기며 국가의 유익과는 별개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제사장들의 태도가 혹 우리의 모습은 아닐런지요.

“나는 구원받았는데 뭐 하면서” 그 사실 하나만을 신앙의 전부인양 생각하고 구원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내 개인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으로만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와는 별개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전히 자신의 소유를 주님께 바치지 아니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나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은혜의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은혜의 자리로 옮겨 가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강제로 우리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 나라를 침노해야 할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나 개인의 것만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라는 커다란 구도 가운데 주신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안일한 구원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내 것을 포기하며 주님의 온전한 종이 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7: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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