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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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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23. 00:03

<창세기 14:1~16> 죄악의 본성을 향한 영적전투

 

 성경말씀 : 창세기 14:1~16

  1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2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3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의 염해에 모였더라 

  4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5  제십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6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7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8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 왕과 스보임 왕과 벨라 곧 소알 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전쟁을 위하여 진을 쳤더니 

  9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과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 네 왕이

     곧 그 다섯 왕과 맞서니라 

10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그들이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말씀묵상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치르는 최초의 전쟁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치루어야 할 영적전투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쟁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여정이 전투와 같이 치열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전쟁기사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구약에서 전쟁의 상황과 모습은 우리의 영적전투의 원리를 알려주시기 위해 성경이 기록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락하신 것이지 전쟁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이것을 왜곡하여 인류역사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경을 근거로 하여 저지른 죄악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영적 싸움의 원리를 보여주는 모형과 예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히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람이 318명의 오합지졸로 격퇴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은 엄청난 대군이요 강군이었습니다. 그들이 당한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생각한다면 그렇게 강한 대군들을 위신을 바닥에 떨어뜨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뭉갠 아브람을 그냥 나둘리 없었을 것입니다.

분명 보복 공격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러한 기록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의 보복 전쟁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원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시기 위해 시청각 자료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그들의 신앙여정에서 겪게될 보편적 영적전쟁의 내용을 아브람의 전쟁을 통해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지금까지 보살펴 주었던 아브람을 배반하고 요단 동편으로 떠난 롯에 대해 아브람은 대단히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롯이 그의 곁을 떠난 후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해준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포로로 잡혀간 롯을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줄 만큼의 넉넉한 마음이 아브람에게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롯을 구하기 싸워야 할 상대는 가난안 5개 동맹국을 정복한 동방연합국의 대군이었습니다.

이건 승산이 전혀 없는 전투였습니다.

아니 롯을 구하려면 생명까지 내놓아야만 하는 전투였습니다.

게다가 아브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도 팔아먹은 비열하고 소심한 남자입니다.

이러한 아브람이 롯을 구하기 위해 승산이 전혀 없는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비열한 아브람에게 롯을 구하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고 롯을 구출케 하셨습니다.

 

롯과 같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의 포로가 된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생명을 걸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의 포로가 된  롯과 같은 우리를 구출해 내시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주신 십자가 사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 구원을 받은 성도는 바로 에수님의 십자가 전쟁에 그의 군사로 초청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말은 십자가의 삶이 성도의 삶속에서 실재화 되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과 그의 후예들인 교회는 타인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손해와 상함을 감수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그의 삶속에서 보여야 하는 예수의 전쟁에 동참하는 자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똑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 본성에 남아있는 죄악이 세력에 대하여 날마다 출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것같고 상함을 주는 일같습니다.

그 길은 좁은 길입니다.

도무지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머리를 짓밟아 놓으셨습니다.

이미 이겨 놓으신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죄성을 햫해  과감히 출격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앞에 대적은 수 많은 대군이고 내 자신은 318명의 보잘 것 없는 존재일지라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그 전과를 우리의 마음에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대적들을 향해 원정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는 아브람의 원정 속에서 모형으로 보여주신 순종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의 삶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옛 육신입니다.

우리는 옛 육신의 습관, 집착, 자기고집등의 배설물들을 과감히 닦아내는 전쟁을 매일매일 치러야 합니다.

죄의 세력 세상을 향해 과감히 출격했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삶이 우리의 내면에서 실재화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     도 

내가 손해보고 상함을 입을지라도 힘들고 어려워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의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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