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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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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21. 00:02

<창세기 13:1~13 > 번영신학으로 물들은 롯의 신앙관

 

 성경말씀 : 창세기 13:1~13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말씀묵상 

 

애굽에서의 경험을 거울삼고 아브라함은 다시 애굽에서 남방땅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곳이 어디였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애굽을 만났을 때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처음 주님을 만났던 곳으로 가야만 힙니다.

그 곳은 장소가 아닙니다.

그 때의 거짓없고 가난하며 상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조카 롯과의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육축이 늘어나면서 일어난 두사람 종들의 땅 전쟁이었습니다.

지금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육축들은 모두 애굽의 바로가 사라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면서 신부대금으로 아브라함에게 준 것들입니다.

애굽에서 불순종의 댓가로 얻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씨움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했을 때 얻어지는 이익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익마저도 결국엔 더 큰 불행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일생중에 애굽으로 내려가는 어리석음을 범한다면 그 댓가로 인해 두고두고 고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재물의 궁핍함으로 인한 것이라면 이번엔 재물의 풍성함 때문에 일어난 싸움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물질 때문에 받는 시험거리가 많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브리스 사람과 가나안 사람도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 간에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불신자보다 바르지 못한 신자들의 행동때문에 얼마나 기독교가 욕을 먹습니까?

 

여기엔 근본적으로 롯의 신앙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촌을 따라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서 함께 나왔다는 것은 롯에게도 신앙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2장 7절에는 ‘의로운 롯’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롯을 경건한 후손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10절을 보면 롯의 신앙관을 나타내는 표현이 나옵니다.

롯은 요단 들판의 물의 넉넉함을 바라보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다과 말합니다.롯에게는 물질의 풍요로움만 있으면 약속의 땅이난 애굽이나 동잏하게 보여진 것입니다

롯은 삼촌과 함께 애굽에 살 때에 가나안과는 비교도 안되는 애굽의 풍성한 문명과 문화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롯에게는 그 풍성한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이라 생각되어진 것입니다.

그 곳이 분명 사단이 지배하는 왕국이었는데도 말이죠.

롯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의 기준을 물질의 풍성함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단 건너편의 땅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땅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풍요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롯의 신앙관이 오늘날에도 번영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신앙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그러한 신앙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롯은 풍요의 땅 요단 건너편을 택하지만 그곳으로부터 멸망직전에 겨우 구원받지 않습니까? 

아무리 풍요롭게 보여도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 아니면 가면 안되는 것을 롯의 신앙관이 그 판단을 흐리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의 인격안에 아브라함과 같은 모습과 롯과 같은 모습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영적인 아브라함과 육적인 롯 사이를 왕래하며 살아갑니다.

 

내 안에는 지금 누구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까?

 

 기     도 

세상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착각하며 살지 않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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