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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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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14. 00:00

<창세기 11:1~9> 교회 안의 바벨탑

 

 성경말씀 : 창세기 11:1~9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말씀묵상 

노아홍수 이후 사람들은 아라랏산 근처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다 시날평지에 와서 삶의 터전을 잡게 됩니다.

시날평지는 사람이 살기에 좋은 조건을 지닌 지역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정착생활을 시작함으로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진흙으로 벽돌 굽는 법을 개발하여 성과 대 즉 도시와 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께 대적하는 행위가 되었습니다.

사실 성을 쌓거나 탑을 쌓는 자체가 하나님께 대적행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시행하는 인간의 마음자세가 문제였습니다.

 

4절을 보면 “우리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라는 말이 나옵니다.

 

첫째, 우리의 이름을 낸다는 것은 인간의 위대함을 나타내자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인간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탑을 높이 쌓는 것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자랑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단어가 3절의 벽돌과 역청이란 단어입니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3절에서 “대신하고”

 

돌과 진흙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창조물을 상징하는 반면 벽돌과 역청은 인간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문명과 문화의 상징입니다.

인간이 고안해 낸 벽돌과 역청의 공법을 통해 인간들은 하늘에 닿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는 하나님 나라대신 자신들의 힘으로 세운 인간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뜻이 바벨탑에 담겨져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 이란 말을 반복해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이 보여주는 인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고 인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중심주의’입니다.

인간의 능력을 쵀대한 높입니다.

인간이 자기 인생에 대해, 인간 세상에 대해 주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살고, 자기 노력만 의지하고, 자기 영광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죄의 뿌리입니다.

 

인본주의는 교회 밖에만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닐찌라도 신앙의 초점이 인간에게 맞추어져 있고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치 않는다면 바벨탑을 쌓고 있는 인본주의입니다. 

긍정의 힘과 같은 비복음적인 믿음과 인간의 무한한 잠재적 능력을 신봉하는 현대 심리학과 교육학에 기저를 둔 프로그램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만 삶에서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주님을 하인과 같이 부리는 인간중심적인 인본주의가 교회 안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가치의 거대한 바벨탑 안에 갇혀서 십자가의 원색적인 복음이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돈과 학벌의 능력을 더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둘째,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 바벨의 정신입니다.

시날 평지에서 그들의 삶은 안정적이 되었습니다.

이제 유랑생활을 끝내고 정착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흩어지진 않고 힘을 합하면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 것같습니다.

인간끼리 똘똘 뭉쳐서 그 결집된 힘으로 하나님을 조직적으로 대항하겠다는 것입니다.

흩어짐의 원문의 뜻은 널리 퍼져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흩어진다는 것엔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널리 퍼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벨탑의 사건은 이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 보겠다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연합이라는 바벨탑을 쌓아 왔습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연합하는 것이 표면적으로 좋아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늘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인류가 평화공존이 가능한 것을 보여 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연합과 일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바벨에서 흘어짐을 면하려고 한 사단의 계략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분명히 잘못된 종교통합 운동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일시적으로 언어가 하나가 됩니다.

제자들이 설교하는 것들이 청중들에겐 모두 자신의 나라 말로 들렸습니다.

바벨에서 언어를 나누셨던 하나님은 성령으로 언어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성령으로 인해서만이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가 하나되는 길도 한 국가 안에서 지역적인 감정이 넘어 하나가 되는 것도 모두 복음으로 성령으로 만이 가능합니다.

좁게는 교회 안에서도 소그룹 멥버들이 성령충만 할때 진정으로 하나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친교 모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하나되려면 성령으로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서로 다른 기질과 성향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세상 가운데 충만해져 온 세계가 다시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질 날을  소망합니다.

 

 기     도 

우리의 삶가운데 하나님 대신 할 어떤 바벨탑도 세우지 않게 하소서

우리 한국교회가 인위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으로 복음으로 하나되게 하소서

우리 가정에  성령님이 함께 하사 가족이 하나 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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