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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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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13. 00:00

<출애굽기 3:5 (1)> 거룩한 땅이니 가까이 하지 말라

 

 성경말씀 : 출애굽기 3:5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묵상

모세가 오시기를 기다린 하나님께서 막상 모세가 떨기나무에 가까이 다가오자 하나님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당신이 거룩하시기에 그 임재하시는 장소도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모세는 조상들로부터 들어만 온 하나님을 직접 뵙는 것입니다.

그러데 그 모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을 먼저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은 그분이 너무 거룩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니님의 속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하는 주제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할 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죄악된 모습입니다.

인간은 특별히 윤리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으면 자신이 죄인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영광이 그를 비추게 될 때 사람은 자신도 몰랐던 추악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두운 방안에서는 아무리 먼지가 많아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문 틈 사이로 비추면 그 빛이 비쳐지는 공간을 따라 버글거리는 먼지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인간이 윤리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죄인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자체가 자신이 어두움에 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어두움 가운데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빛을 비추어야만 버글거리는 죄악들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소명을 받을 때에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 나서 자신의 누추한 모습과 죄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화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5).


얼마나 죄가 많았으면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사야는 선지자로 부름받기전 막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경건한 이스라엘의 후손으로서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그가 하나님을 뵙기 전에는 자신의 죄악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난 후에는 자신이 그렇게 추악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 모세도 하나님께 소명을 받기 전 자신의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며 죄지을 일이 그렇게 있었겠습니까? 

더구나 모세는 애굽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려지는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자기의 뜻대로 자신의 의지와 신념대로 살라왔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뒤에 이어지는‘신을 벗으라’는 하나님 말씀에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일단 ‘신을 벗으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기준이 되어 살아온 삶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까지 네 마음대로 살지 앟았느냐? 

이것을 모세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모세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이 기준이 되어온 지금까지의 삶이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죄악된 삶이었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소명은 바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시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기독교에서 이러한 면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사영리에  씌여진 몇 마디의 영접 기도를 하고 나서는 신자가 된 것으로 당연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면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자기 존재에 대한 실존적인 자각입니다.

지식적으로 내가 죄인이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영광 앞에 비추인 나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두렵고 떨리는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인들가운데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찌보면 첫 단추를 잘못낀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지나치게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만을 강조한 열매라는 것입니다.

사실 순서상으로 볼때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하니님의 거룩한  속성을 먼저 얘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심리, 상담 관점에서의 치유사역이 활발한 것은 신앙의 시점에서 자아에 대한 실존적 자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처니 하는 것들은 십자가로 인한 실존적 자각의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 상처를 또 심리 상담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치료하다 보니 나중에 또 그 상처가 재발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치유법들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못됩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인식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추악한 죄인이었음이 깨달아지는 실존적 자각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혐오스럽게 들리겠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이 추악한 죄인이었음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가장 긍정정인 자아상이 확립됩니다

왜냐하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인 자아의 뿌리는 인간의 자존감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긍정적인 자아의 뿌리는 십자가로 인한 자존감이기 때문입니다.

 

 기     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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