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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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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3/02/06 00:00

<창세기 37:6~11> 요셉의 꿈은 비전에 관한 얘기가 아닙니다.

 

 성경말씀 : 창세기 37:6~11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말씀묵상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요셉의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이 꿈 이야기를 비전과 연관하여 보통 얘기합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성경에서 요셉의 스토리는 한 개인의 삶을 다룬 것이 아니라 야곱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담아 낸 이스라엘 공동체의 역사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구속의 역사를 묘사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글로 기록되어 성문화되기 전까지는 꿈이나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방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꿈과 환상은 대부분 공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한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꿈도 요셉이라는 개인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꿈과 비전이 실현되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요셉의 꿈은 족장들에게 주어진 계시의 말씀이 성취되어질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꿈의 내용을 살펴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셉의 첫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단들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만 생각하면 분명 요셉의 형제들뿐 아니라 야곱과 요셉의 어머니까지 요셉을 섬기고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더욱 요셉을 미워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우리도 그 꿈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그의 형들이 요셉에게 가서 절을 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요셉의 꿈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면 야곱과 야곱의 아내도 요셉에게 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애굽에 가서도 요셉에게 절하지 않았을 뿐더러 특히 야곱의 아내들은 애굽에 내려가지 전에 이미 모두가 죽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 가족의 명단에 야곱의 아내들은 없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야곱의 아내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과는 지금 아무 상관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해와 달이 요셉에게 절한 꿈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꿈은 요셉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 굶주린 백성들을 살린 사건은 영적인 기아에 빠져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사 우리를 그 기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예수님에 의해 구원받은 만국의 백성들이 주님을 섬기고 경배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가족은 언약공동체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꿈 이야기를 보십시요 왜 곡식단을 묶고 있었다고 표현 하고 있을까요? 

곡식단을 묶는 행위는 곡식을 추수하고 거두어들이는 때에 행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 곡식단들은 마지막 추수때에 천국 창고에 거두어들인 하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녀들을 그 곡식단으로 보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곡식단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해와 달과 별은 계시록에서 성도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즉 구원 받은 성도들이 영광 가운데서 주님을 경배하며 섬길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꿈을 두 번 꾼 것은 그 꿈이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모형인 요셉을 통해 먼저 상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궁극에 가서는 원형인 예수님께 성도들이 경배를 드릴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생애 자체가 예수님을 그린 것이기에 요셉의 생애에서도 형들에게 절을 받는 것을 통해 예수님이 받으실 경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의 꿈은 성도들이 주님께 경배하게 될 사건을,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모형인 요셉의 생애에 상징적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 주시는 것이며 궁극에 가서는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께 경배하며 섬길 것을 계시하시는 이중적 의미가 있기에 꿈을 두 번 꾸게 된 것입니다.

또한 두 번의 꿈은 이 땅과 하늘에서 항상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경배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이 꿈 때문에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들이 셉을 시기하고 미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요셉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에 대한 시기심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스라엘로서 이 계시를 간직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자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면 그 가운데 내포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만 햇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그 꿈 이야기가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내용이기에 거기서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무조건 배척하고 그 꿈을 전해준 요셉까지도 미워한 것입니다.


오늘날 꿈 이야기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 자신에게 기분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왜 사람들이 기독교를 배척합니까? 

자신들을 향하여 죄인들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이라는 끔직한 얘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존심과 체면을 적당하게 세워 주면서 좀더 고상한 차원의 인생 담론을 말한다면 그래도 복음이 매력이 있을터인데 나름대로 정의롭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예수 믿지 않으면 유황불이 펄펄끊는 지옥 간다고 괜히 들쑤셔 놓으니 복음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에서도 나타납니다.

내 안에 감추어진 죄악을 드러내고 우리의 정체성을 폭로시키는 설교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설교의 홍수 속에서 내 입맛에 맞는 기호 식품을 고르듯이 마음에 부담감 없이 적당히 종교적인 위로와 인생의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설교들을 취사선택합니다.

오늘날 선지자적인 설교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강단이 점점 제사상적인 설교로 채워져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의 내면 깊이 숨겨진 죄악들은 벗어 던지기를 싫어하여 그것을 그대로 놓아 둔 채 위로와 격려만을 추구하는 청중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흐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모든 내용을 달게 받아 먹어야 합니다. 

말씀안에는 위로와 격려도 있지만 내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조차도 기쁘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취향과 신념에 따라 취사선택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유지되지 않을때 요셉의 형들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무시하고 적대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기     도 

우리에게 성경을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시며 주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감사히 받을 수 있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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