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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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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1. 11:00

<창세기 1:1> 시간의 유한성

 

 성경말씀 : 창세기 1: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묵상 

성도 여러분 평안하셨습니까?

제가 이런 인사로 시작을 하게 되는 것은 이 인사말에 자신 있게 대답할 정도로 우리의 삶이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평안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그럼에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우리는 당연히 들고만 있어야 그 정체성을 놓치고 사는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출애급하여 광야생활을 하면서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

바로 그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 창세기입니다.

따라서 창세기를 통해 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역사를 알 수도 있지만 창세기의 1차 수신자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창세기를 대할 때 더 풍성한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1절 말씀은 간단 명료하면서도 많은 것을 압축해 놓은 선포입니다.

이 말씀 앞에 나의 신앙을 재확인 하고 신앙고백을 다시 한번 해 보기 원합니다.

나에게 이 고백이 있다면 성경전체를 믿을 수 있고 성경을 모두 믿는다면 우리 삶에 문제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가장 기본적이지만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이 명제를 통해 내 신앙을 점검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1절 어두에 있는 ‘’태초에“의 뜻은 시간의 시작 시초를 말합니다.

여기에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시간의 시작와 함께 우주가 지어졌다는 것은 시간도 하나님께서 우주만물과 함께 동시에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우주만물과 함께 시작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철학과 설화 학문 속에는 시간이 영원전부터 자연히 존재해 왔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20세기에 와서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시간도 공간과 서로 변환될 수 있는 상대적인 물리량이라는 것이 밝혀져 성경의 무오성을 더욱 드러내기는 했지만)

이 단어 하나가 성경은 인간이 고안해 낸 책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시임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면서 힘들어 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 시간들을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하는 긴 고통의 시간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인쉬타인이 설명하는 시간의 상대성이론 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간의 상대성 때문에 우리는 고난가운데도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대적이기에 고난의 끝이 있고 상대적이기에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절대시간과 비교할 때 그 기간은 대단히 짧은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테초에” 이 말씀에 담긴 깊은 의미가 희미해져 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나게 하는데 어떤 모양으로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까?

 

 기     도 

시간의 유한함을 알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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