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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7. 8. 00:00

<출애굽기 8:21~32>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파리 우상

 

 성경말씀 : 출애굽기 8:21~32

21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22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24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26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28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30  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그 파리 떼가 바로와 그의 신하와 그의 백성에게서 떠나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말씀묵상

강퍅한 바로를 향하여 하나님은 네번 째 파리떼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파리떼는 단지 파리정도가 아니라 세 번째 재앙의 이처럼 사람이나 짐승의 피까지 빨아먹는 그러한 곤충들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곤충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 떼를 지어서 몰려들 것이라는 겁니다.


고대 애굽인들에게 파리는 질병과 기쁨을 관장하는 곤충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파리와 관련된 ‘하트콕’ 이나 ‘케프리’ 같은 곤충 신을 만들어 놓고 질병 치유와 기쁨을 위해 그것을 숭배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파리가 더러운 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병에 걸리지 않고 활기차게 날개 짓하는 모습에서 그런 생각들을 한 것 같습니다.

파리를 치유와 기쁨의 신으로 생각하는 풍습은 가나안 땅에까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내쫓으며 그 사람을 치유하여 기쁨을 주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한 것이라고 예수님을 음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알세불의 의미가 바로 ‘파리들의 왕’이란 뜻입니다.

바알세불은 치유의 신들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치유의 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땅에서도 파리는 치유의 신으로 숭배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웃기는 얘기입니까?

인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으면 파리와 같은 곤충을 자신들에게 치유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숭배하고 있습니까?

이 파리 대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미물에 불과한 것들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파리와 같은 미물들을 우상으로 만들고 섬기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신이 없으면 정말 자신들의 건강과 기쁨을 빼앗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실때 전혀 가치가 없는 그것들을 우리는 우상으로 삼고 그것들이 없으면 나의 행복이 빼앗길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추구하고 쫓아가는 가치들중에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파리를 숭배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고대사회의 우상을 보며 비웃음을 짓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형태만 바뀌었을 뿐 동일한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볼때 화려한 문화, 과학문명, 의술등이 대단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지 하나님의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재앙에서도 동일하게 자신들이 신처럼 생각했던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심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재앙에서는 애굽과 하나님의 백성과 구별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땅에는 파리떼를 없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애굽에는 재앙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애굽에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베푸는 것임을 명벡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때가 우리에게는 구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을 애굽의 파리재앙과 분리 시켰다는 것은 이제부터 이스라엘을 파리와 같이 애굽인들이 추구하는 무가치한 것들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뒤에 나오는 바로의 타협안과 거기에 대응하는 모세와 아론의 태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고센 땅에는 재앙이 비껴간다는 것을 알게 된 바로 왕은  참으로 모세와 아론의 하나님이 참 능력의 하나님이시구나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을 불러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25절) 

너희가 제사만 지내면 되지 않느냐, 그러니 굳이 3일 길을 가지 말고 이 애굽 땅에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바로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 좋다는 것입니다.

다만 전과 같이 자신의 노예로 생활하면서 여호와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삶의 원리, 방향, 가치관은 여전히 애굽식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제사만 지내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의 주장입니다.

종교는 허용하지만 애굽을 떠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바로의 주장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주장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 세상의 원리와 방법을 따라 살아가는데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고, 헌금할 테니 그것으로 족한 줄 아시오, 하는 식이 된다면 바로의 제안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의 제안에 대하여 모세가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내게 되면 애굽인들이 그러한 제사를 가증히 여기기에 우리를 미워하여 돌로 칠 것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고 애굽을 완전히 떠나 멀리 가서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창세기에서 말씀드렸지만 애굽에서는 소나 양을 신으로 숭배하였기에 짐승을 잡아 희생제사 드리는 것을 야만적인 짓이요 자신들의 신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모세가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기원전 5세기 경에 애굽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이 희생제사를 지내다가 애굽 사람들에 의하여 종족이 학살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세상의 가치와는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애굽을 떠나야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이 대답에 바로가 또 절충안을 내 놓습니다.

애굽에서 나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28절)

너희 하나님이 명하신 사흘길이 되는 시내산까지 갈 필요없이 애굽백성들의 눈에 띄지 않는 적당한 곳에서 제사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바로의 이러한 제안이 다 무엇입니까?

예수는 믿되 가치관과 의식은 세상의 것을 그대로 추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의 가치를 좇는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파리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단은 오늘날도 여전히 바로와 같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세상과 둥글둥글하게 살아가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단순히 주일에 교회에 나가고 헌금생활 잘하고 교회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추구하던 세상의 모든 가치와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결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가 파리우상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기     도 

적당하게 예수를 믿으라는 사단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가치와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떠나 주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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