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qtman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Rss feed Tistory
구약 QT/출애굽기 2018. 1. 1. 00:00

<출애굽기 34:29~35> 말씀의 영광과 그것을 가리는 수건

 

 성경말씀 : 출애굽기 34:29~35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말씀묵상

40일이 지나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생명을 거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그분과 교제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런 현상이 갑작스럽게 특별한 사건을 통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게 된 것입니다.

모세 자신은 몰랐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를 보았습니다.

그 광채는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 나는 광채였습니다.

지금 모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 가운데 있다면 분명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지금 어떤 위대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40일간 고독 속에서 연단을 받으며 하나님과 교제를 한 것뿐입니다.

우리의 얼굴과 삶에서 하나님의 광채가 일어나는 것은 위대한 일이나 업적을 남겨서가 아닙니다. 나만의 고독과 연단의 시련장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접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 현상을 보며 그것을 반가와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 가까이 오기를 꺼려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어색하고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아직 죄악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었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는 더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마  금송아지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은 무언가 불편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 영광을 가려야만 자신들이 편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광에 비추이면 우리의 실상이 우리의 숨은  죄악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어하고 경험하고 싶다고 얘기들 합니다.

그래서 열정적인 예배를 드리며  예배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했다고 스스로들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광채를 볼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얼굴에서는 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 마음을 두고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탐욕의 빛이 가득합니다.

세상이 그런 우리를 보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분명 우리에게 경건의 능력이 있으면 세상은 우리를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가까이 오기를 꺼려하게 됩니다.

죄를 지으려고 하는데 우리를 보면 두려운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부담스러운 그들에게는 수건이 필요했습니다.

모세의 얼굴에 씌울 수건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아직도 그 얼굴에서 수건을 벗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은 구약의 율법을 읽으며 그 속에서 빛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자신에게서 나는 광채를 자랑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광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영광은 율법의 영광이었습니다.

그 영광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르키는 작은 빛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모세의 겸손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영광 자체를 대수롭게 생각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만 초점을 향하게 하려는 모세의 심정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경을 읽어도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하는 수건들이 있습니다. 그 수건으로 인하여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 수건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보고 신앙생활을 해도 이와 같은 것으로 말씀을 뒤집어 씌어야 우리의 마음이 편하고 만족해집니다.

말씀 그 자체가 다가올때는 그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 말씀이 나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적당힌 죄악을 즐기며 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영광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감사하며 즐거워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심령에 드리워진 세상의 모든 수건을 거두어 내야 할  것입니다.

 

 기     도 

말씀의 영광 앞에 설 때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심령을 허락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35:1~3

 

,
TOTAL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