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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11. 11. 00:00

<출애굽기 27:1~8 (2)> 구원의 뿔

 

 성경말씀 : 출애굽기 27:1~8

1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2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4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5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말씀묵상

번제단의 네 모퉁이 위에는 단과 연결된 네게의 뿔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 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렌’은 뿔피리, 나팔, 광채라는 뜻을 가진다.

이 제단 뿔은 생명과 빛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뿔은 힘과 권세를 상징하였습니다.

제단의 뿔은 생명을 주는 힘과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제단의 뿔을 잡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면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왕이 학깃이라는 부인으로부터 낳은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솔로몬을 제치고 왕이 되려고 꾀하였다가 실패하자,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 제단 뿔을 잡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때 아도니야가 제단 뿔을 잡고 “솔로몬왕이 오늘날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하다 하나이다”라고 말하여,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50-53)

이는 일단 구원과 생명의 상징인 제단 뿔을 잡으면,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과 사무엘하 기자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 찬송했습니다. (시편 18:2, 사무엘하 22:2-3)

누가복음에는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며, 구원의 뿔이 바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8-69, 마태복음1:1)

즉 제단 뿔의 본질은 구원의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4면과 4개의 뿔로 구성된 번제단은 사람을 대신한 희생제물의 번제를 통해 속죄함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과 성육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망의 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죽이려고 달려들지라도 제단에 있는 뿔을 잡게 되면 우리는 생명을 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성현과 철인들이 그 사망의 법에서 헤어 나오려고 무수한 노력을 해 왔지만 인류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사망의 법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그 사망의 권세에  쫓겨 다니다가 우리가 붙잡은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세워진 구원의 뿔을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망의 권세가 우리의 생명을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옥의 영원한 형벌가운데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망의 쏘는 법이 우리를 삼킬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제단의 뿔을 잡는다고 모두가 죽음을 면하는 것은 아니엇습니다.

율법에는 일부러 살인한 자는 단의 뿔을 잡더라도 끌어내어 죽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애굽기 21:14).

예를 들어 요압의 경우에는 다윗왕을 배신하고 아도니야를 좇았던 사건 때문에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았습니다. (열왕기상 2:28)

요압은 이스라엘 군대장관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아마사를 아무 까닭 없이 칼로 죽인 사건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열왕기상 2:29-33)

이는 제단의 뿔을 핑계삼아 아무 거리낌 없이 죄를 고의로 짓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분명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어떤 죄도 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만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다고 하여 거리낌 없이 고의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면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상태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은 후에도 여전히 연약한 육의 속성상 우리는 계속 넘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의는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의 특징중의 하나는 죄를 미워하는 자꾸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약한 육신의 속성상 여전히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어차피 다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죄짓는데 있어서 고의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자가의 구원을 악용하는 자입니다.

지식적으로만 예수를 믿는 것이지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또는 말씀의 선하심과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히브리서 6:4-6)


진정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구원받은 자라면 비록 넘어지고 또 넘어질망정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     도 

주님께서 생명을 바쳐 이루어 놓은 구원을 값싼 은혜로 여기는 망령된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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