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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10. 26. 00:00<출애굽기 25:10~16 (3)> 이동하는 법궤
성경말씀 : 출애굽기 25:10~16 |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말씀묵상 |
법궤는 내 귀퉁이에 금으로 고리를 만들고 금을 입힌 조각목 채를 만들어서 두 고리에 채 하나씩 맬 수 있도록 제작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정한 장소에 고정적으로 거하시는 곳이 아니라 늘 움직이시는 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막 전체에도 나타나는 계시입니다.
성막이 이방신전과 다른 점은 외관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도 있지만 더 큰 특징은 이방신전처럼 고정적인 장소에 고착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막의 제조가 광야에서 이루어졌기에 계속하여 이동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과 맞물리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막을 광야에서 제조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전에 한번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현장을 유목문화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유목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계시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구속의 진리를 계시하기 위해 하나님이 특별한 섭리하심 가운데 펼쳐진 역사입니다.
가나안은 애굽에서 일주일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땅에서 율법도 받고 성전도 건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가 제작되었더라면 하나님의 전이 처음부터 성막이 아닌 성전의 형태로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40년을 고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계시하시기 위한 전적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따라서 광야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구속의 진리를 설명하기 설정한 특수한 역사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야에서 제작된 성막입니다.
즉 광야에서 성막을 제작하려면 필히 움직일 수 있는 형태여야 했습니다.
이것은 움직이는 형태를 통해서 하나님이 가르치시고자 한 구속의 진리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막이 이방신전과 다른 점은 외관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방신전의 신은 고정되어 있어서 그 자리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신들이었다는데 반해 하나님은 그렇게 갇혀있지 않은 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과 참신의 특징과도 같습니다.
우상이란 인간의 욕망을 투영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과 욕망안에 갇혀 있는 것이 우상입니다.
인간이 우상앞에 가서 빌고 있지만 사실은 그 신을 자기 욕망과 신념으로 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뜻대로 조정할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인간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속에 가두어 고정시켜 놓고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보고 오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 우주를 추월해 계신 분입니다.
어는 한 장소에, 인간의 생각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조정당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만 가서 보고 오는 신이 아니라 우리의 삶가운데 늘 모시고 살아가야 할 분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어느 한 장소에 갇혀 있지 않은 초월해 계신 분이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인생에 늘 개입하셔서 함께 하시는 우리속에 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임재의 상징인 그 법궤를 제사장이 메고 이동하라고 하십니다.
법궤 귀퉁이에 만든 네 개의 고리와 두 개의 채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것은 사람이 메고 다닐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성막이나 법궤를 이동하는데 있어서 사람이 그것을 운반하게 하셨습니다.
실용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분명 수레나 마차에 실어 운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며 안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법궤를 실용적이지 못하게 사람이 메고 다니도록 제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이 복음을 우리가 메고 다니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와 미련하게 보이지만 전도란 방식을 통해 영광의 빛이 전파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기적을 조금만 보여주어도 아니면 기독교인이 모두 무조건 세상에서 성공하게 하신다든지 하면 이 복음이 매우 효과적으로 전파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방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련해 보이나 제사장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유지하며 수고하여 이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합니다.
제상장이 법궤를 메고 갈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듯이 이 복음을 메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 법궤를 메기 위해서 거룩하여야 하고 또한 어깨에 무거운 짐이 된다 할지라도 복음을 메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법궤는 저절로 이동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깨 위에 짊어질 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복음을 내 어깨에 메고 주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기 도 |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을 내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가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25:1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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