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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8. 22. 00:00

<출애굽기 16:1~3 (1)>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이스라엘

 

 성경말씀 : 출애굽기 16:1~3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말씀묵상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식량도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마라의 쓴 물 사건과 엘림에서의 은혜와 쉼을 바로 전에 경험하였지만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들을 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은혜를 체험한 것도 결국은 그들의 육신의 욕구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사건들을 영적인 의미와 은혜로 승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다시 육체의 어려움이 올때에 불평하고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음 자체야 모세와 아론을 향해 원망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은 당장 배가 고픈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육체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연약함 때문입니다.


똑같이 굶어도 유난히 배고픔을 못견디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단 배고픔의 문제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유난히 육체의 고통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타고난 성향도 있지만 후천적 환경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고통을 많이 겪고 그것을 극복한 사람일수록 극한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 것이 수월합니다.

편안한 삶이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똑같은 고통도 그 정도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견디기가 힘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 것은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배고픔이라는 육체의 고통에 익숙하지 못한 결과로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배고픔을 참을 수 있는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훈련이 되지 않은 그들에게 배고픔은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할 만큼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기독교는 분명 극기 훈련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한 종교의 기저에는 모두 인간의 능력과 공로가 깔려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때로는 금욕적이고 극기를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삶에서 찾아오는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반응이 너무 예민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잊어버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원 운동이나 청교도들이 외형적으로는 금욕주의자로 보일정도로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극기훈련의 모습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 우리는 너무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보십시요 그 전보다 더욱 덩치는 켜졌는데도 불구하고 뙤약볕 아래서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합니다.

또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얼마나 약해졌읍니까?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이렇게 약해진데에는 너무 편안한 삶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해병대 캠프같은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할 수 없는 극기훈련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고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에 대한 내성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럴때 그 아이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느 정도는 금욕적이고 절제된 삶의 형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금욕주의자이거나 고행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스트레스와 고통에 대한 내성을 쌓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극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망각하지 않고 원망치 않으며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고전 9:25)

 

 기     도 

고통과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쌓을 수 있도록  편안한 삶에 너무 익숙하지 말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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