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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5. 30. 00:00<창세기 50:7~14> 야곱의 화려한 장례 행렬
성경말씀 : 창세기 50:7~14 |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말씀묵상 |
드디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야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온 국민이 70일을 애곡하였습니다.
그 당시 바로를 위한 애곡 기간이 72일인 것을 감안하면 야곱의 죽음을 위해 70일을 애곡했다는 것은 야곱의 장례가 국장에 준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을 보면 애굽의 많은 백성들과 3부요인, 유지, 장로들, 그리고 군대가 야곱을 장례하러 가나안 땅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행렬이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기이한 것은 그 대단한 행렬이 애굽의 피라밋으로 향하지 않고 가나안 땅 한 구석에 있는 막벨라 굴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화려하고 거창한 장례라면 피라밋으로 향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의 운구 행렬은 화려하고 거대한 피라밋이 아니라 가나난의 이름 모를 동굴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장례를 통해서까지 가문의 위세를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장례식장 앞을 치장하고 있는 화려한 화환들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은 죽음을 통해서까지 인간의 자존감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화환이 많이 들어오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세상적인 위치와 가지고 있는 세력을 나타내 보이려 합니다.
즉음 앞에서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할 영원한 세계에 대한 관심을 이 땅에서의 화려한 꽃 장식으로 덮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 총리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장례식은 야곱이 애굽의 2인자의 아버지라는 위치를 나타내는 장례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장례가 요셉이 총리로 있었기에 애굽에 법에 따라 주어진 것뿐이지 죽은 야곱이나 요셉이나 그 화려한 장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화려한 장례를 통해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내 세우고자 했다면 야곱의 시신을 왕들이 묻히는 피라밋으로 향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장례행렬은 세상의 권위의 상징인 피라밋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저 가나안 구석에 박혀있는 초라한 막베라 굴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요.
군대가 호위하는 화려한 장례행렬이 국립묘지가 아닌 저 두메산골의 척박하고 이름없는 야산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말입니다. 얼마나 우스운 모습입니까?
균형이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성경에 한 사람의 장례식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록된 경우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화려한 장례를 왜 이렇게 자세히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분명히 이 화려한 장례는 야곱의 삶과 동떨어져 보입니다.
무엇인가 엇박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장례식을 통해 즉음의 자리에까지 권력의 위세와 화려함을 추구하는 애굽의 속성과 그것과는 대비되는 성도의 속성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얼마든지 야곱의 시신을 떵떵거리며 피라밋으로 향하게 할 수 있는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애굽의 가치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장례행렬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에 들어와 살때에 화려하게 살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중앙을 버리고 변방의 고센 땅을 택하여 살아간 그 행적이 지금 야곱의 장례행렬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장례행렬을 통해 다시 한번 애굽에서의 야곱과 그의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아마 당시 야곱의 장례는 온 애굽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을 것입니다.
“아니 왜 애굽에 화려한 미이라가 되어 피라밋에 묻히지 않고 꼭 그 산골에 가서 묻힐 필요가 있느냐 ” 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통해서도 신자와 불신자가 어떻게 다른가를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죽어서까지 피라밋과 화환들로 인간의 자존감을 치장하는 애굽의 가치를 따르지 말고 세상이 이상하게 우리를 바라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막벨라 굴을 향해 우리의 발걸음을 옮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 도 |
우리의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50:1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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