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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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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5. 31. 00:00

<창세기 50:15~21>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성경말씀 : 창세기 50:15~21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말씀묵상

야곱이 죽은 이후 요셉의 형들은 혹시나 요셉이 자신들을 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겉으로는 상처가 치유된 것 같았지만 그들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형들은 형식적인 것에 의존해서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합니다.

마치 오늘날 예수님과의 관계를 마치 형식에 의존해서 유지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마음들로 인해 형들은 요셉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의 당부를 법적 계약서로 삼아서 요셉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상대를 저만큼 두고 지내겠다는 생각입니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지옥불에 들어가는 항목들에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이 맨처음 항목으로 나옵니다.

사랑이 없이 두려움을 갖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것은 율법으로 대체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집 매매 할 때에 계약서를 쓰지요.

그냥 사랑의 대화로서 계약이 성사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약서라는 법적인 형식으로 갖추는 것은 상대방이 엉뚱하게 나올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즉 온전하고 상대를 믿고 따르고 사랑할 수 없기에 법으로 그 관계를 단단히 해두자는 겁니다.

형들의 두려움은 위장된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보니,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합니다.

강자에게 아부를 하는 것이 진정 사랑입니까?

아닙니다.

이런 발언은 자기 식대로 자신을 지켜보겠다는 태도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도 이런 식이 되면 아니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없고, 그 대신 심판주에 대한 두려움만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법적인 형식 관계를 다지려고 합니다.

마치 계약서 쓰듯이 말입니다.

"예수님, 이렇게 예수 믿으면 죄 용서한다고 계약서에 명시했잖아요. 그러니까 이 계약서 들고 왔으니 어서 천국문을 열어주세요"하는 식으로 나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계약서 확 찢어버립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요셉이 형들의 말을 듣고 확 울어버립니다.

형들은 다음과 같은 계약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요셉아, 아버지께서 생전에 살아 계실 때, 너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있는 것 알지? 즉 아버지 야곱이 죽더라도 형들에게 복수하지 말라는 말씀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그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지 말고 제발 우리를 해치지 말아다오"라는 겁니다.


왜 형들은 왜 요셉을 못믿는 것입니까? 그것은 본인들이 내놓을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마지막 심판 때는 이런 형식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십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것이다' 하고 소개합니다.


19-21절에 보면,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 야곱의 죽음 이후로 이스라엘을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만 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야곱의 아들들이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루어 가기 위해서 주님과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계약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의무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흉내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온전히 하나가 되는 기쁨 속에서 누리는 영적인 풍성함을 맛보려면 주님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에 서 있어야만 합니다.

신앙생활이 즐겁습니까?

어려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에 의한 끈으로 주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비록 십자가을 지고 가는 삶일지라도 그 삶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     도 

의무감 때문이 아닌 주님을 사랑하는 맘이 신앙생할의 원동력이 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50: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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