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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9. 3. 1. 00:00<창세기 49:27> 과격함이 용감함으로 바뀌는 은혜
성경말씀 : 창세기 49:27 |
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말씀묵상 |
베냐민은 야곱이 살아 있을 때 요셉대신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아버지의 눈에 띌만한 악한 일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이 베냐민을 향하여 축복을 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야곱이 사랑한 자식 같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자신의 생각대로 축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대신하여 베냐민이 받을 복을 예언합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 지파도 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지파였습니다.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로 표현한 것은 그의 난폭한 성향을 말합니다.
그 난폭함으로 초기에는 남의 것을 빼앗아 먹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움켜 쥐고 있었던 것을 나누어 주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은 유다지파와 지역에 낀 여리고, 벧엘, 기브온, 미스바, 예루살렘등, 그 땅이 매우 거칠고 황량하여 살아가기가 힘든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에서 살아가다 보니 아마도 그 성향이 거칠어지고 과격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런 호전적이고 과격한 성향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역사 초기에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과 갈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과격함은 다른 지파들에게 불안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물어뜯는 이리로서 다른 지파의 삶을 빼앗아 먹은 것입니다.
사사기 19장에 보면 레위인이 베들레헴에서 첩을 찾아서 돌아오다가 베냐민의 마을인 기브아에서 첩이 밤새도록 희롱을 당하고 죽습니다.
이 일로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 연합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음으로써 겨우 600명의 남자만이 살아남아 멸문지화를 당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베냐민은 후에 유다 지파가 하지 못한 일, 즉 예루살렘으로부터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는 일을 과감하게 행하였습니다.
또한 남왕국과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는 결정적 순간에 다수의 10지파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법궤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선택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때도 다른 지파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수가 귀환하여 이스라엘 재건에 기여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시작이 가장 작았을 뿐 아니라, 중간에 심각한 오류를 범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중심을 잡고자 했던 베냐민 지파를 보다 상세하게 기록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한 가정을 비롯한 공동체가 혹 그 시작이 내세울만한 것이 없고, 빈약하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우리 뒷 세대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진리 편에 선다는 것은 이후 우리 뒷 세대를 위한 가장 큰 배려요, 고귀한 유산임을 깨닫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는 왼손잡이 사사 에훗, 이스라엘 초대 왕이라는 ‘사울’, 모르드개와 에스더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가 있던 지파였습니다.
최초 야곱이 베냐민을 축복할 때 ‘물어뜯는 이리’ 라고 했듯이, 베냐민 지파는 과격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범위와 제한이라는 한계를 통해 안전과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과격’이라는 것은 그 범위와 제한을 넘어서 격하게 반응하는 반사회적 행위입니다.
이런 과격함은 주위를 불안케 하며, 더불어 살아가기에 불편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자신들의 성향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던 이러한 과격함이라는 단점을 ‘용감’이라는 장점으로 승화시켜 갔습니다.
그 결과 민족전체의 죽음이 예고되었던 부림의 날을 베냐민 지파인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통해 구원의 날이 되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족보의 마지막을 기술하는 역대상 8장 40절에 ‘다 용감한 장사’라는 말을 기록케 하셔서 베냐민 지파가 어떻게 자신들의 단점을 승화시켜 왔는지를 기념케 하셨습니다.
똑같이 예수를 믿는데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난히 척박한 환경가운데서 살아가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독 그 사람에게 그러한 환경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럴때 우리의 마음은 낙담과 좌절에 빠집니다.
베냐민이 유다와 에브라임이라는 강력한 지파 틈새에 있는 척박한 땅에서 살며 그 성향들이 난폭하게 되었듯이 우리는 그런 환경을 만날 때 왜 나만 이렇게 빈약하고 어려움을 당하느냐고 하나님께 따지며 불만과 회의로 우리의 심령이 황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심령가운데도 함께 하시며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까지는 그러한 황페한 심령을 가지고 물어뜯는 이리와 같이 주위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 왔다고 해도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한다면 오히려 더 큰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움켜쥔 것을 나누어 주며 주위의 사람들을 살리는 은혜의 삶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난폭함이 용기로 승화 되었듯이 척박한 환경을 지나온 심령은 비록 그 과정에서 회의와 원망이 있었을지라도 오히려 더욱 견고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더욱 큰 은혜의 장중에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 도 |
인생을 살아오며 우리 안에 내재된 부정적인 성향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승화되어 주님이 쓰시기에 아름다운 성향들로 변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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