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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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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5. 20. 00:00

<창세기 49:20> 편안함에 길들여지면 무장해제 당합니다

 

 성경말씀 : 창세기 49:20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말씀묵상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셀 지파는 갈멜, 두로, 갈릴리 바다의 서쪽으로부터 지중해 연안을 잇는 땅을 기업으로 분할 받게 되었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을 포함하는 그 곳은 일반적으로 평지여서 남쪽 팔레스타인 산악 지방의 척박한 땅에 비해 아주 살기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식물들은 궁중의 음식으로 들어갈 정도로 질과 맛이 뛰어났습니다.

솔로몬 왕 시절에 희람 왕에게 진상한 곡식 또한 아셀 지파의 땅에서 난 곡식이었습니다.


그 풍요로운 상태를 성경은 그 발이 기름에 잠길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로 인해 다른 지파의 형제들에게까지 기쁨을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신33:24)

얼마나 올리브 기름이 많았는지 아셀 사람들은 감람유에서 목욕을 할 정도였습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이 감람유를 사러 와서는 그 땅에 주어진 복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또한 아셀 지파는 철과 놋으로 된 문빗장이라고 비유될 정도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의 지파였습니다. (신33:25)


아셀 지파의 풍요와 안녕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가시적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풍요와 안녕속에서 그들의 마음이 나태해져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사 드보라가 가나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싸울 때 아셀은 그 싸움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파는 시스라의 군대와 싸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셀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 해변에서 평안히 거하며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삿5:17)

편안한 삶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함께하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자신들만 문제없으면 그만이라는 개인주의가 그들은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셀 지파는 그 지역 가나안 주민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셀 지파는 자신들이 풍요롭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구태여 근처의 가나안 주민을 건드려서 그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셀은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습니다. (삿1:32-33)


그러나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몰아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 실용주의를 선택하여 좋은게 좋은 거란 생각에 잔재해 있는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않은 결과 아셀 지파는 바로 위에 있는 두로와 시돈으로부터 아스다롯이라는 우상을 이스라엘 경내로 들어오게 합니다. 

영적인 순결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풍족하고 편안한 환경에 익숙해진 아셀 지파는 적을 적으로 여기지 않게 하였습니다.

오히려 적을 이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투의지를 상실해 버리게 된 것입니다.


아셀 지파는 다른 어떤 지파보다도 풍요와 안녕의 복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복이 오히려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분명 다른 어떤 세대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와 안녕의 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안하고 풍요로운 이 복에 익숙해지다 보면 분명 우리도 아셀지파와 동일한 전철을 밟게 될 것입니다.


이미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반드시 싸워야 할 적들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지나치게 개인주의화 되고 이기주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거시적인 틀에서 신앙을 생각지 못하고 그저 나의 개인적인 삶에 위로와 평안이나 주는 신앙으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내 삶이 평안하면 주변 일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아니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괜히 그 일에 끼어들어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심령가운데 아스다롯의 우상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우리의 영혼을 삼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일지라도 그 복 자체에 우리의 초점이 모아져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초점은 오직 그 복을 주신 하나님께로만 향해야 하고 우리의 관심은 나 개인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때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은 우리를 완전히 무장해제 시킬 것입니다.

 

 기     도 

풍요롭고 편안한 시대의 조류에 익숙해지지 않게 하사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내 개인의 삶이 평안하다고 해서 무관심한 태도로 주변 일을 보지 않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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