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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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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7. 00:00

<창세기 42:9> 부분적으로 열린 하나님의 계시

 

 성경말씀 : 창세기 42:9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말씀묵상

 

요셉의 형들이 애굽에 와서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그들은 알아 보았지만 그들은 요셉을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에게 절을 하고 있는 형들을 보면서 요셉은 어릴 때 꾼 꿈이 생각났습니다.

9절의 표현은 지금까지 요셉이 꿈을 잊고 있다가 형들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을 보고서야 꿈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하듯이 어릴 때 꾼 꿈을 생각하며 애굽에서의 고난을 이겨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요셉이 고난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더라” 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그날그날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모든 고난을 극복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에 요셉이 어릴 때 꿈을 생각하며 고난을 이겨냈더라면 ‘요셉이 자신이 꾼 꿈을 생각하고’ 라는 표현이 성경에 여러 번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이 꾼 꿈 얘기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다가 9절에서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자신의 꿈을 형들의 절하는 것을 보며 다시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요셉이 어릴 때 꾼 꿈의 해석을 형들과 그의 부모가 자신에게 절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설명했듯이 요셉의 꿈은 한 개인의 신상에 관한 꿈이 아니라 구속사적인 의미가 담긴 공적인 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형들이 요셉에게 절하고 있는 것은 요셉의 꿈이 성취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요셉의 생애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삶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받을 고난과 영광을 모두 요셉의 삶에서 모두 담아내야 했기에 주님께서 당하실 고난의 상징으로 애굽에서 죄 없이 고난을 당해야 했고 주님께서 받을 영광의 상징으로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다른 사람의 꿈은 해석을 잘 하면서 자신의 꿈은 온전히 해석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부분적으로만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일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해석하는 계시를 온전히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만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요셉 시대에 필요한 만큼 하나님의 계시를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계시의 점진성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은 정결한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속죄의 효과가 있는 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몰랐습니다.

제사제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하는 것일 뿐 실제 속죄의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통해 그들의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 만큼만 구원의 진리를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어 형들에게 절을 받는 것은 요셉이 꾼 꿈의 본래 뜻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상징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그 상징의 사건을 실제 꿈의 성취로 생각한 것은 그 시대에 요셉에게 열어주신 계시가 그 만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요셉에게 절을 할 때 요셉은 어릴 때 꾼 꿈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묵시를 보여 주시면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까지는 왜 보여주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묵시가 이루어질 때가 그들 세대가 아니라 먼 미래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일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굳이 필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일들을 알기 원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자세히 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직 허락하지 않은 계시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주어지는 하나님 계시에 충실하는 것이 미래에 하나님 뜻이 성취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계시록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많은 이단의 유혹이 생깁니다.

때가 되면 그 묵시도 우리에게 온전히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꿈을 잊고 살게 하신 것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심입니다.

꿈이 있으면 하나님만을 신뢰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보여준 꿈에 초점이 모아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길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앞길을 전혀 알 수 없을 때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요셉이 어릴 때 꾼 꿈을 잊고 살았기에 날마다 주어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     도 

 

 

 

 

미래에 되어 질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갖지 않게 하시고

오늘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2: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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