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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9. 20. 00:00<창세기 4:25~26> 라멕의 화려한 삶과 대비되는 에노스의 단순한 삶
성경말씀 : 창세기 4:25~26 |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멘)
말씀묵상 |
하나님은 약속한 여인의 후손이 이 땅에 오실 통로로 아벨 대신 셋을 아담 하와에게 주십니다.
사단이 가인을 통하여 아벨을 해하게 하고 여인의 후손이 오는 길을 중단시키는 듯 했지만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단절되지 아니하고 셋을 통하여 여전히 그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가인 계열의 라멕과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며 죄악이 판치는 암울한 시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셋과 그의 후손 에노스를 통해 조용히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때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어 보이는 때가 있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동기를 제공해 줍니다.
에노스란 이름의 뜻에는 ‘유한한’ ‘죽어야하는’ ‘연약한’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의 부모인 셋의 신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이렇게 부정적인 이름을 지어 준 것은 셋이 인생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신의 인생이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늘 기억하고 그 질그릇 같은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이것을 해결해 주기 위해 앞으로 오실 여인의 후손을 바라보며 그 약속을 해 주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의존하며 살아가라는 뜻에서 에노스란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이러한 셋의 신앙은 그 자녀에게도 그대로 전수되어 그들은 아벨 이후 가인과 그 후손에게서 끊어졌던 믿음의 제사를 다시 회복시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찬양하다의 뜻)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공적인 예배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라멕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 없이 도시를 건설하고 화려한 문명을 발전시키며 그것을 자랑하고 살아갈 때에 셋과 그 후손들은 시대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제사에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셋의 후손에게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도 없습니다.
뛰어난 업적도 세우지 못합니다.
라멕 쪽에서 볼 때 부러워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가인 계열의 사람들이 볼 때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요.
셋과 에노스에 대한 행적으로 ‘여호와를 불렀더라’ 이 한 마디가 다입니다.
얼마나 단조롭고 단순합니까?
성경이 이렇게 단순한 한 마디로 이들의 삶을 표현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 이외는 아무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았으며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기록할 만한 위대하고 화려한 업적을 남긴 것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 화려한 문명을 이루어 낸 라멕과 그 후손들의 풍성한 행적과는 확연한 대비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대한 업적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물량주의에 젖은 우리의 생각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그저 자신이 처해 있는 그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예배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신자의 삶이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 그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가치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그것만으로 우리의 행적을 삼아야 합니다.
불신자와 구별짓는 신자의 특성을 육신의 축복이나 형통함으로 삼으려 하지 마십시요.
저들의 기준과 눈으로 보면 우리가 축복받지 못한 자 같이 보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히려 저들이 부러워 할 아무런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 한가지로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 그 삶이 세상과 구별되는 신자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화려함을 부러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저들은 우리의 예배 때문에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에노스는 이 세상에 라멕과 같은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게 하려면 누군가 피의 제사를 드려서 그 죄를 덮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에 에노스와 그의 가족마저 답답한 제사를 팽개치고 라멕이 추구하는 세상의 화려함과 재미를 찾아 달려 나갔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즉시 임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라멕과 그의 후손들도 에노스 때문에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지구의 한켠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우리 때문에 세상의 심판이 지연되고 저들이 살아가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그렇게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때에 우리는 세상에 대해 당당해질 것이며 저들의 화려함을 동경하거나 부러워하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자리 잡지 못할 것입니다.
기 도 |
세상에 보이는 화려함에 우리의 마음을 두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단순한 이 삶으로만 만족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5: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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