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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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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12. 00:00

<창세기 42:26~38 (2)> 베냐민을 놓지 않으려는 야곱

 

 성경말씀 : 창세기 42:26~38

 

26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27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2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 

30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엄하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우리를 그 땅에 대한 정탐꾼으로 여기기로 

31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32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 

33  그 땅의 주인인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르되

      내가 이같이 하여 너희가 확실한 자들임을 알리니

      너희 형제 중의 하나를 내게 두고 양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4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 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말씀묵상

 

베냐민을 애굽으로 데려가야만 한다는 자식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베냐민을 내 놓지 못합니다.

지금 베냐민은 야곱 인생에 마지막 보루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 있어 마지막 보루와 같은 존재가 베냐민에게 국한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뿌리를 찾아 가면 요셉과 나아가 라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야곱이 요셉과 베냐민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했던 것은 라헬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이 라헬의 소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전보다도 많은 변화와 성숙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움켜쥐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라헬입니다.

라헬은 야곱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존재입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라헬을 얻기 위해 수고하지 않아도 될 7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냈습니다.

그녀 때문에 평안해야 할 가정이 늘 시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잘못된 선태까지도 선한 것으로 바꾸시는 은혜로 인해서 그렇지 라헬은 애당초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선택이었습니다.

야곱이 레아를 선택하는 것으로 만족을 했으면 그의 인생이 좀더 평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인생 말년에까지 라헬의 그림자에 가리워져 있습니다.

지금 그의 가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베냐민을 꼭 애굽에 보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야곱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것으로 인해 그 일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하는 요셉의 요구가 야곱의 아들들의 회개를 유도한 것이기도 하지만 야곱의 입장에서는 그에게 주어진 이름 이스라엘이 그의 삶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도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많은 부분에 변화를 보이면서도 꼭 움켜쥐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 습관중에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이것만은 안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아홉 가지 계명을 다 지켰어도 한 가지 계명을 어기면 열 가지 계명을 모두 어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 해도 자신이 결정적으로 내놓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잘하는 신앙생활이 무의미 하다는 것입니다.

아니니아 삽비라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이 하는 정도까지는 따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재산 전부를 내 놓는 것은 그 마음에 허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본질을 놓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자신이 붙들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은 작업입니다.

자신이 조금 정성을 기울이면 할 수 있는 것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안 된다고 하는 것들까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베냐민은 무엇입니까?

 

 기     도 

 

 

 

 

나의 영적 발목을 붙잡고 있는 베냐민을 주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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