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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4. 3. 00:00<창세기 41:37~45> 계시를 받은 자가 누릴 영광
성경말씀 : 창세기 41:37~45 |
37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말씀묵상 |
요셉의 정책 제안을 들은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모두 이를 좋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모두 요셉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도 생각하지 못한 정책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노예인 그에게서 이러한 지혜가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감동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바로가 말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총리 자리를 맡기고 자신의 권력을 모두 요셉에게 실어줍니다.
말이 2인자이지 실제로 애굽의 권력은 요셉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절대 권력자들은 권력 누수 현상을 막기 위해 2인자를 키우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지금 요셉이 2인자임을 천하에 공포하며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요셉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것도 아닙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입니다.
어떤 검증도 되지 않은 히브리인의 노예입니다.
신하들의 반응은 더욱 놀랍습니다.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요셉이 권력투쟁을 해야 할 경쟁자였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의 정책 제안을 기쁘게 받아 들였습니다.
게다가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발탁하는데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생각과 정책이라라도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못한 사람에게서 나오면 그것을 시기하고 별거 아니란 듯이 반응하는게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바로가 그 노예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려고 합니다.
꿈 한번 해석해 주었다고 아무런 검증도 없이 총리로 발탁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왕의 말이 법인 고대 사회에서 왕의 뜻을 내 놓고 반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성경의 뉘앙스는 신하들도 요셉을 좋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들은 요셉에게서 어떤 권력욕이나 명예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대면했을 때 꿈해석을 잘 하는 자라고 칭찬하자 꿈 해석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확실하게 밝힙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 모든 능력을 자신의 것인양 말해도 누가 탓할 사람 없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흉년에 대비한 정책을 말하는 가운데서도 요셉은 자신이 그 일을 맡아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진심으로 하는 말에 듣는 모든 사람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에 요셉이 총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애굽의 관료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금방 눈치 챘을 것입니다.
그들은 요셉에게서 어떤 탐욕도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가 요셉을 2인자로 세운 것도 요셉이 권력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기사를 보며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는 사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 설교의 단골 메뉴가 요셉의 꿈 얘기입니다.
요셉처럼 원대한 꿈을 갖고 살아야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총리에까지 오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요셉은 총리에 대한 관심과 꿈이 전혀 없었기에 총리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바로 알면 알수록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탐욕을 비전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지 않게 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그 순간까지 요셉의 꿈은 애굽의 총리가 아니었음을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디어 요셉은 왕의 인장반지를 끼고 세마포 옷을 입으며 금사슬을 목에 겁니다.
그리고는 왕의 수레를 타고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습니다.
그의 고난의 생애가 영광중에 피날레를 장식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 보여 주신 하나님의 계시가 이와 같이 성도들에게 이루어질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을 그린 것이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한 성도가 함께 누릴 영광스런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그 영광은 이 땅에서 누리는 어떤 영광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으로 성도의 영광을 보여 준 것은 그 당시에 대제국이었던 애굽의 총리 만큼 영광스런 모습을 표현할 좋은 소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지금까지의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요 고난으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였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할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그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 도 |
요셉의 생애를 보며 세상적인 욕망을 비전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모든 탐욕을 버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1:4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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