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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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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3. 20. 00:00

<창세기 40:4~7> 주변을 살피는 신앙

 

 성경말씀 : 창세기 40:1~3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말씀묵상

 

바로의 두 관원들이 감옥에 갇힌 후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동시에 비슷한 형태의 서로 다른 꿈을 꾸고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감옥 안에서 그 꿈을 해석할 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신하가 편한 삶에 있을 때에 꿈을 꾸었다면 그 꿈을 가지고 근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현재의 상태가 그곳에서 살아 나갈 지 종신토록 있을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당할 것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이 그들을 휘감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의 미래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꿈을 꾸었으니 그 꿈이 자신들의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감옥 안에서 꾸는 꿈들은 어떤 종류의 꿈이든지 상관없이 그들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에 대한 막연한 불암감이 있었기에 그들은 요셉을 통해 꿈 해석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앞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감옥 안의 두 관원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근심과 염려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인생이란 것이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죄의 사슬에 묶인 채 어두움에 가운데서 근심하며 살아가는 감옥 같은 곳입니다. 

그 감옥 안에서는 고위 관리직이라고 해서 근심을 덜하고 노예 출신이라고 해서 근심을 더 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돈과 권력이 있다고 해서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귀영화의 유무에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근심과 염려로 살아가는 것이 유한한 인간의 삶입니다.

사람들이 왜 더 종은 학벌을 얻으려고 하며 돈을 더 벌려고 하고 더 쌓아 놓으려 합니까?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예축할 수 없는 미래를 그나마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상 사람들에게 자연과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꿈이 있습니다.

그것이 일반계시입니다.

감옥 안에서의 꿈이 두 관원에게 고민을 주었듯이 자연과 인생 안에서 주어지는 일반계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유한함과 그로 인한 인생의 고민을 안겨 줍니다.

사람들은 자연과 인생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한계와 신의 존재, 사후의 세계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며 인생의 궁극적인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계시 자체는 인생의 미래를 정확히 얘기해 주지 못합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인생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꿈 해석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계시를 해석할 특별계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일반계시를 대하면서도 인생의 고민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관원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 것은 고민하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해석을 듣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에게 자연계시를 주신 것은 그것을 대하면서 인생에 대해 깊이 성찰하며 고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 고민의 해답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과 복음에 대한 갈망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제 요셉은 두 관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표합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이 근심 빛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럼에도 요셉은 그들의 얼굴에 평상시와는 또 다른 어떤 근심이 있는 줄로 판단을 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요셉이 모른 척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세심한 관심을 표명합니다. 

평상시와 좀 다르다고 느꼈을지라도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밀한 관심을 표명합니다.

이 한 마디의 작은 관심 표현이 그를 영광의 길로 인도하는 일련의 사건들로 연결되게 됩니다.

사실 감옥 안에 있으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이 감옥은 왕의 감옥 즉 일반감옥보다도 더 큰 고통과 외로움을 주는 그런 옥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자신만 운신하기에도 힘들었을텐데 요셉이 그 관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여유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나 먹고 살기에도 바쁜 세상에서 주위의 영혼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 요셉과 같은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며 고민하는 인생을 향하여 긍휼함을 가지고 다가가야 합니다.

저들이 어두움의 고민 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받은 계시로서 저들의 삶을 바르게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저들의 영혼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보이며 복음을 전해줄 사람들이 우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 문제에만 급급하여 살아가는 인생들이 아닙니다.

비록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가기는 저들과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알지 못하는 복음의 풍성함을 누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란 자신의 주변에 관심을 갖고 늘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감옥같은 삶의 한가운데서 무엇이 진리인줄 모르고 방황하며 고민하는 인생들이 우리 옆에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눈에 그 모습이 보입니까?

 

 기     도 

 

 

 

 

복음의 계시를 받은 자로서 인생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영혼에 대한

긍휼함이 우리에게 넘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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