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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2. 5. 00:00<창세기 33:11~15> 눈높이를 맞추는 이해와 배려
성경말씀 : 창세기 33:11~15 |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말씀묵상 |
동생과 화해한 형 에서는 야곱을 데리고 자신이 사는 ‘세일’로 가서 함께 살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원한과 증오의 마음을 품을 때와 화해와 용서의 마음을 품을 때는 지옥과 천국만큼이나 그 처세의 태도와 감정의 느낌이 다릅니다.
형 에서는 대단히 호탕한 사람입니다.
그런 형을 야곱의 경쟁심이 그로 분노하게 했던 것입니다.
형 에서의 호의를 야곱은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33:13,14).
야곱은 에서나 자기 입장에서가 아니라, 가족들과 가축들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여 결정합니다.
13살에서 6살 사이의 어린 아이들을 장정들과 발걸음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만 선택하고 결정하는 이들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빚어내는 아픔과 고통이 무엇인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중심적이요 신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생애와 주변에는 늘 파란만장한 사건이 계속됩니다.
야곱은 이제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과거와 달리 자기중심적 의식에서 많이 탈피한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 에서가 해주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야곱은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고 가족과 가축떼의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좋은 것이라 여겨지면 당연히 상대방도 그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호의를 베풀면서도 상대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베푸는 적이 많은데 모든 사람이 자기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어른의 관점에서 좋은 것이 아이들 관점에서도 좋을 리 없고 남자의 관점에서 좋은 것이 여자의 입장에서도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상대에게 호의와 사랑을 베풀때에는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과 방식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과 베품의 자세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랑과 베품은 자기 기분일 뿐입니다.
상대를 위한 최대의 배려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자신의 눈을 맞추는 것입니다.
야곱은 또한 형 에서의 마음까지도 헤아립니다.
자신의 삶의 방식과 선택이 형 에서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을 기하여 지혜롭게 에서의 배려를 거절합니다.
지금 야곱은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대상들에게 진정으로 배려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야곱을 에서는 사랑스럽게 여기며 최대한의 호의를 베풀고자 애를 씁니다.
“내가 내 종자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33:15).
약탈자가 빈번히 출몰하던 당시 광야 여행을 우려한 에서의 배려였습니다.
뭐 하나라도 도와주려고 애쓰는 에서의 모습입니다.
야곱의 진정한 배려에 에서는 더욱 야곱을 챙겨주려 합니다.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과 종종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신앙의 이유라기보다는 대부분 우리 자신의 지혜롭지 못하고 잘못된 삶의 방식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 도 |
상대방에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33: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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