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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17. 1. 15. 00:00<창세기 29:1~14> 은혜 안에 있는 야곱의 이중성
성경말씀 : 창세기 29:1~35 |
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말씀묵상 |
야곱은 벧엘을 경험한 후 길을 떠났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길 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라고 했습니다.
이 길은 벧엘을 경험하기 전 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입니다.
이 길은 새로운 삶의 길이었습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확신에 찬 길이었습니다.
소망으로 가득한 길이었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벧엘을 경험한 후에 야곱의 삶의 자세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기쁨이 넘치는 인생 길이 되었습니다.
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길을 떠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경쾌하고 생동감 있게 발걸음을 띠는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벧엘에서 하란까지는 그 길이 거의 800Km나되는 길입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20일 이상 걸려야 하는 길입니다.
야곱이 그 먼길 을 가는데 지도가 있었겠습니까?
나침반이 있었겠습니까?
지금처럼 이정표가 잘 되어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다녀 보았던 경험이 있었겠습니까?
야곱은 지금 전혀 모르는 길을,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생동감 넘치는 발걸음을 하고 하란으로 향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벧엘서 받은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힘들고 아득하기만 한 길이 가벼운 길로 바뀐 것입니다.
야곱의 환경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환경을 대하는 야곱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자신을 억누르던 마음의 짐들이 가벼워졌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특별히 본문 1절은 하란까지의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길을 떠났는데 벌써 도착했습니다.
이것은 대략 800 Km나 되는 먼길을 걸어 왔지만, 가까운 길을 가듯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란 땅까지 순적히 잘 왔다는 것을 암시 하고 있습니다.
실제 야곱이 라반을 찾기까지의 구체적인 과정을 보십시요.
야곱은 그가 도착한 우물에서 만난 목자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삼촌 라반을 아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됩니다.
거의 우연같고, 짜여진 각본같이 라반의 집을 찾아 갑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이 인간의 꾀와 술수를 동원하지 않아도 꼭 각본에 씌여진 것 같이 목표지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행로는 하나님이 순적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의 상태가 어떤지 보십시요 야곱이 우물에서 만난 목자들에게 내 형제라고 호칭합니다.
"내 형제여"라는 말은 굉장히 친근감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같은 친척이나 같은 동족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낯선 이방인에게 형제란 호칭을 쓰고 있는 것은 그들을 경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겁고 기쁜 마음이 있다 보니 사람을 대할 때에도 사랑과 정감을 가지고 다가서게 된 것입니다.
또한 덮여 있는 우물의 뚜껑을 열고 양에게 물을 먹이라고 덕담도 건냅니다.
이것은 야곱의 마음이 대단히 여유롭고 평안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거리 여행을 마친 여행자의 지친 심신의 상태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후 기쁨과 소망이 그의 맘을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가운데 있는 야곱에게 라반의 딸 라헬을 보면서 인간적인 면모가 나옵니다.
야곱은 라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우물을 덮은 돌덩이를 치우고 양에게 물을 먹입니다.
그러나 그 우물은 목자들이 다 같이 모였을때 열기로 한 공동의 약속이었습니다.
물이 귀한 지역의 특성상 한 사람의 양들에게만 많은 물을 주지 않고 모든 목자들의 양들에게 골고루 물을 나누어 주기 위해 함께 만든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것을 깨고 라헬의 양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그 지역 목자들 간의 약속을 무시합니다
이것은 부정적 의미에서의 목표지향적인 야곱의 기질이 은혜 속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위해 타인을 아랑곳 하지 않는 야곱의 태도는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이고도 합니다.
또한 야곱이 라헬을 보고 입맞추고 울었다는 것도 친척을 만난 기쁨의 감격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그 동안의 설움이 북받쳐 올라 왔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이 그 동안의 설움을 잊게 하였는데 라헬을 만나는 순간 그 은혜를 망각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의 가족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요.
그의 이야기 속에는 여호와 하나님에 은혜와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가 구구절절이 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야곱의 기사를 보십시요.
야곱의 이야기와 태도 속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에 대한 의식이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르켜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고하매” 라고 한 마디로 표현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종이었다면 “그가 자기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설명하고”라고 표현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개되는 그의 인생 가운데서 계속하여 나타날 야곱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기뻐하며 살다가도 언제든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나올 수 있음을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 도 |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망각하지 않고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29: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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