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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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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출애굽기 2017. 6. 8. 00:00

<출애굽기 2:15~22> 광야학교에서의 모세의 훈련

 

 성경말씀 : 출애굽기 2:15~22

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말씀묵상

애굽인을 죽인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오게 됩니다.

모세는 자신이 잘못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간을 통하여 모세를 훈련시키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모세가 애굽의 궁에서 배우고 쌓아온 것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쌓아온 권력과 학벌과 명예로 모세는 자신감과 열정에 차 있었지만 오히려 그 결과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재능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늘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는 많이 배우고 권력과 돈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조건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혀 중요한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자는 자아가 다 깨어져서 하나님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좋은 학벌과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본성이란 것이 그러한 세상의 요건들을 모두 갖추어 놓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자신의 재능과 능력으로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할 위험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학교에서의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결국 미디안 광야 40년의 세월을 통해 모세는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청종할 수 있는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해 갑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미디안의 삶을 암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서 어느 우물가에 이르렀는데 남자 양치기들이 여자만 양을 치는 자들에게 횡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양떼에게 물을 먹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보고서서는 그 여자 양치기들을 도와서 양떼에게 물을 먹여 줍니다.

여기서 연약하고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을 돕고자 하는 모세의 성격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고 연약한 사람을 도우려는 성향때문에 애굽사람도 죽이게 된것이죠.

그런데 애굽에서는 불의를 보고서 사람을 쳐 죽였는데 여기서는 노를 발하여 남자 양치기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저 연약한 여인들을 도울 뿐입니다.

충천해 있던 인간적인 열정과 자신감이 어느정도 누그러진 모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미디안 광야의 출발선에서 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미디안 광야 학교에서의 훈련을 통해 다다를 목표지점이 어디인지를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여인들을 돕는 계기로 르우엘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본격적으로 미디안 광야생활을 해 나갑니다.

성경은 미다안에서의 모세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잇습니다.

왜냐하면 그 삶이 양치기로서 매일매일이 똑 같은 무료한 삶이었을테니까요.

역설적으로 성경이 미디안에서의 모세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세의 생활이 특별히 기록할 만한 사건이 없는 매우 단조로운 일상이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단조롭고 무료한 삶이 애굽의 궁에서 화려한 삶을 살아온 모세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심경을 22절이 증언합니다.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애굽을 떠난 미디안 광야에서의 씁쓸한 삶을 나그네란 한 단어로 응축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정체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처음 수년 동안은 애굽의 왕자에서 미디안의 양치기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한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자신이 애굽의 왕자였다는 사실을 잊어가며 양치기로서 주어진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며 그 생활에 충실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애굽의 왕자로 있으면서 쌓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무명의 양치기로서 갖는 정체감을 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40년전 애굽에서 기세 등등하게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모두 사라지고 자신이 재능과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가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까지 기다리 신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때에는 그 사람이 완전히 기절하고 난 후에라야 구출이 가능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완전히 죽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일하시기가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어떤 일하심입니까?

사람의 열심과 가능성을 포기시키는 일하심입니다.

어떤 뇌성마비 형제가 침무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시로 노래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걷지 못하는 자유로 주님을 찬송케 하소서. 우릴 쓰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이 장애로 임하였으니, 우리가 그 손에 들려진 도구임을 기뻐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가 듣지 못하는 자유로 주님을 찬송케 하소서. 우릴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침묵으로 임하였으니, 침묵 중에 임하는 그 하나님을 만나게 하소서...”


하나님의 열심이 장애로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열심을 하나님께서 꺾으시기 위하여 40년을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침묵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그 답답함을 아시겠습니까?

날마다 보느니 하늘과 구름, 풀과 바위들만 널려있는 황량한 광야, 이제 늙은 양치기기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무려 40년 세월을 지내면서 한숨과 원망과 울분들이 깎이고 다듬어지고 포기되어지는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광야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열심이 모두 꺽여져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 인생가운데 시작될수 있도록 말입니다.

 

 기     도 

내가 많이 가지고 있어야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출애굽기 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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