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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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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1. 6. 00:00

<창세기 19:1~11> 양다리 걸친 신앙의 비애

 

 성경말씀 : 창세기 19:1~11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말씀묵상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세상이 너무 좋아 한 다리는 예수님께, 한 다리는 세상에 걸치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대부분이 그런 식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세상을 완전히 즐길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를 못합니다.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양심이 있기에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처럼 막 살아가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에 적응하는데에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소돔성에 있는 롯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롯은 분명 하나님의 백성이요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세상이 좋아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에 살고는 있었지만 죄악에 찌든 소돔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롯을 전혀 신앙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하지만 롯이 생각만큼 그렇게 죄악에 완전히 물들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1절을 보면 ‘성문에 않았다가’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의 성문 광장은 재판이나 계약체결이 이루어지던 곳입니다. 

그가 성문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은 그가 소돔 백성들의 재판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나름대로는 그곳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두 천사들을 상관하려는 것을 말리자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라고 소돔사람들이 롯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롯이 소돔성에 들어와서는 옳고 그름에 대한 설교를 그들에게 자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롯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나그네들을 보호하려고 힘씁니다.

소돔사람들이 그 나그네들을 상관하여 자신들의 쾌락의 도구로 삼으려고 했던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그렇게 비정하고 난폭한 소돔과 같은 사회에서 안면이 없는 나그네들을 대접한다는 것은 롯의 신앙양심이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도 롯에게는 생면부지의 나그네를 대접할 정도로 경건한 백성의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돔사람들은 롯이 나그네들을 내 놓지 않자 롯까지도 해하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롯이 그들에게 공들인 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소돔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그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려면 롯도 똑같은 죄악의 절정에까지 동참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롯은 아무리 세상이 좋았어도 그들의 모든 죄악에까지 동참할 수는 없었습니다.

 

소돔과 같은 이 세상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롯과 같은 상황에 처해진 사람들입니다.

신자가 세상에 다가서기 시작하면 세상은 자신들과 동일한 죄악에까지 내려와야 인정을 해줍니다.

세상에 대한 어설픈 태도는 도리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가 그들과 친해지고 인정받기 위해 어정쩡한 태도로 조금의 신앙양심을 양보했다고 해서 그들이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엔 더 큰 양보를 원합니다. 자신들의 가치관과 완전히 동화되어야만 자신들의 친구로 여겨 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처음에는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어차피 그들의 죄악에 올인할 수는 없습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 가랑이만 찢어지기 쉽습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분명한 자세와 태도를 밝히고 그 자세를 일관하여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게 해를 당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기     도 

 

주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며 살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분명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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