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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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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26. 00:04

<창세기 15:7~16> 고통은 깊은 은혜 체험의 통로

 

 성경말씀 : 창세기 15:7~16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말씀묵상

아브라함의 생애는 한마디로 언약의 생애였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15장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을 확증해주는 횃불언약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실 언약의 확증을 기다리며 그 일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아브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먼저 3년된 암소와 암염소, 수양 그리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준비하여 그것들을 쪼개어 놓습니다.

짐승들은 3년 정도가 되었을때 가장 상태가 좋다고 합니다.

3년생 짐승들을 가져다 놓으라고 하신 것은 제물들을 준비하는데 소홀함이 없이 정성껏 준비하라는 것이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잘 준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체들을 향해 달려드는 솔개들을 열심히 쫓아내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솔개를 쫓다 피곤하여서 저녁 일찍 잠이 들었을까요?

이러한 모습들은 언약체결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받기 위해 아브람이 정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나오는 구절의 내용이 무엇인지 보십시요.

지금 아브람에게 큰 흑암과 두려움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짓누르는 그 경험은 40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생활을 통해 반복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실 확증을 기다리며 정성을 다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흑암과 두려움이 올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브람에게 흑암과 두려움이 임했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확증과 은혜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인생가운데 흑암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알지 못하고 있는 깊은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을 덮친 이 어둠의 세력은 아주 무서운 무지를 나타냅니다. 

아브람이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람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덮치고 있는 아주 큰 어둠의 장막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 경험을 통해 이 어둠의 세력이 무엇인지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죄의 노예상태로 있어 보지 않으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죄 가운데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그 구원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감격이 별로 없습니다. 

어둠의 세력에 있어 본 자만이, 그래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는 사람만이 죄에서 자유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으며 구원의 감격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적 문제가 이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없이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심리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는 현대 심리학의 영향으로 교회에서조차 죄악의 무서움과 심각성을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죄악의 세력이 얼마나 우리를 옭아매는지를 뼈저리게 겪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날 교회에 와서 이신칭의 교리를 듣고는 용서를 선언 받았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죄의 노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끔직한 것인지를 모르는데 어느 날 죄에서 해방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용서 받은 이후 더 감사하고 기뻐하며 죄악을 멀리 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어진 자유를 오용하여 방종하며 살아가고 자기의 마음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가는 이기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양산되고 있지 않습니까?

 

죄악으로 인해 고민을 하며 인생의 곤고함을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만이 복음이 복음으로 다가옵니다.

 

사도바울은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로마교회를 향하여 복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 자신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로마교회는 복음을 말하지만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믿는다고 했지만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였으며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했고 그 복음이 그들의 삶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추구하며 그것들로 자랑삼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교회 안에 인생의 곤궁함과 죄악의 비참함에 대한 경험 없이 기독교 신앙에 귀의 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인생에 찾아오는 어둠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더욱 사모케 하고 은혜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합니다.

 

 기     도 

우리 마음에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의식을 깊게 해주시고

날마다 구원의 감격이 넘쳐나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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