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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시니이다 (시편 11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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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창세기 2022. 10. 19. 00:02

<창세기 12:4~9> 세겜은 선택의 기로이다.

 

 성경말씀 : 창세기 12:4~9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말씀묵상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입성을 합니다.

성경이 마침내란 표현을 쓴 것은 아브라함의 가나안 입성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천신만고 끝에 약속의 땅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전혀 자신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던 원주민에게 배척과 질시를 당합니다.

그 땅은 잘 먹고 잘 살수 있도록 준비된 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약속의 땅으로 넘어 왔는데 이 땅은 우리를 환영해 주지 않습니다.

구원받았으면 모든 것이 형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경은 지금 예수를 믿게 된 성도가 처음 맞게 되는 현실이 바로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겜 모레 상수리나무는 풍요와 다산을 좇는 우상이 신전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가나안이 어떤 곳인지 그 실체를 알게 된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이 천국 백성인 나와는 전혀 다른 형질의 이방의 우상들과 풍요와 다산만을 좇는 이방인들이 우글거리는 무서운 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바로 하나님 나라에 넣지 않으시고 우상의 신이 우글거리는 세상에 던져 넣으실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속해있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다름, 을 믿음을 발휘하여 세상에게 보여 주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여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풍요와 다산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른 판단과 다른 결정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때 세상은 하나님을 알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그의 말년에 사라가 헤브론 땅에서 죽자 헷사람들에게 아내를 매장할 장지를 좀 팔라고 합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자신을 ‘나그네요 우거한 자’라고 지칭합니다.

자신이 가나안 땅에서 늘 유랑하고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가나안땅 그 자체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의 방백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장지를 정하라고 합니다.(창23:2-6)

 

이방민족인 헷사람에게 아브라함은 하나님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전 생애와 존재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아브라함의 복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와 같이 살았지만 자신의 삶을 통해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한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를 믿게 되면 우리의 눈을 열어 풍요와 다산의 우상을 좇는 모레 상수리나무라는 세상의 실체를 보게 하신 후 “너희도 이 길을 가려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며 살겠느냐?” 라고 선택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4절을 보면 야곱이 그의 아들들과 벧엘로 올라가면서 세겜땅 상수리나무 아래에 자신들의 몸에 지금까지 지니고 다니던 간이용 우상인 악세사리들을 모두 묻어버립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상수리나무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갔었던 바로 그 상수리 나무라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야곱은 자신들의 우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좇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도 세겜에서 이스랑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아모리 족속의 신을 선택할 것이지 결단을 촉구합니다. (수 24:1,15)

세겜의 모레 상수리나무는  바로 성도가 어느 길을 가야할 지를 선택하는 곳입니다.

 

이제 7절을 보십시요 하나님은 그곳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신들을 섬기는 지역은 그 신들의 영토로 간주되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풍요의 신 바알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주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바알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만드셔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겠다는 상징적 표현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단을 쌓습니다.

비록 자신은 무능하고 연약하여 이 땅을 살아가기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나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드리겠다는 결단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여정에 계속하여 곳곳에 여호와께 단을 쌓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땅에 남기고 간 것이 무엇입니까?

그에겐 무슨 대단한 업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부자로 알고 있지만 정작 그는 발붙일 땅 한쪽 없었습니다. (행 7:5)

그의 일생에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을 드리는 단을 쌓은 것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나간 자리에 순종과 헌신이 담긴 단이 서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것들을 먹고 싸놓은 배설물들이 쌓여 있습니까?

 

 기     도 

우리의 삶이 비록 세상의 신이 지배하는 곳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만을 선택하게 하시고 일생을 하나님께 단을 쌓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내일말씀 : 창세기 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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